2006년 시작된 국가과학자 사업은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창의적 연구를 수행하며, 과학한국의 새로운 롤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지의 개척자 국가과학자들이 있다. 이들 국가과학자들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본보는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연구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혁명적인 연구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낸 국가과학자의 소개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해외 연구 인프라 등을 알아보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연구재단과 공동으로 '미지의 개척자, 국가과학자'를 6회로 나눠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필요 없다. 2006년 과학기술계에는 의미있는 사업이 시작됐다.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를 지원, 새로운 이론과 지식 등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과학자사업이 첫 발을 내디뎠다. 기존의 연구가 아닌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연구를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세계과학기술의 추격자인 아닌 선도자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과학자 지원사업은 국내 과학기술의 포지션닝 전략과도 같다.
▲왜 국가과학자인가?=국내 과학기술계는 2000년 들어 남들이 다하는 분야 최고가 되기 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 최초가 돼야 한다는 위기감이 자리잡았다.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고 뒤를 쫓아가는 추격형 과학기술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추격형 전략으로 고도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는 기초연구 없는 응용연구란 있을 수 없고 기초지식의 진보 없이는 응용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바랄수 없게 됐다.
그동안 가시적인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에 집중했지만 이러한 연구자 지원사업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차세대 신성장 동력원으로 기초연구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쉽사리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가운데 개인연구자를 위해 연간 15억원의 연구비를 10년간 지원하는 국가과학자 사업은 차세대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창출한 과학자를 선정, 장기적으로 지원해 세계어디에 내놔도 뒤지 않는 과학자로 키우는 프로젝트가 국가과학자 사업이다.
그동안 국내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단기적이고 돈 되는 응용, 개발연구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로 인해 과학계는 단기간 성과를 내기 쉬운 연구, 돈 되는 연구에만 몰두하는 풍토가 팽배했다. 특정 프로젝트에서 논문 등 소기의 성과가 없으면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 연구자들에게도 '빨리 빨리' 라는 조급함을 강요했다. 예산부족과 시간에 쫓겨, 연구자들은 자신이 하고픈 연구를 하지 못했던 연구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도전하고픈 연구에 최장 10년간 매년 1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 국가과학자 사업이다.
국가과학자에 대한 연구지원 기간도 사업초기 6년에서 10년으로 늘려 국가 대표급 과학자들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구방향이나 내용에 대해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하고 평가 역시 선정 5년 후에 중간평가를 해 추가 5년을 지원하는 식으로 함으로써 과학자들이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독창적 연구성과를 창출, 우리나라 과학기술발전과 경제발전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기대되는 연구자를 선정된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기술자로서 이들의 안목을 빌려 우리나라가 역량을 집중해서 향후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추격형 연구개발체제에서 벗어나 창조형 연구개발체제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이같은 정책기조는 2002~2010년 기초연구연구개발투자는 연평균 15.9%로 가장 높은 증가률을 기록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기초연구개발투자는 응용연구개발투자를 추월했다. 국가과학자 사업은 '과학자들도 이정도 연구하면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목표를 제시, 학생들과 젊은 연구자들의 도전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효과도 기대된다.
▲최고가 아닌 최초=기초연구와 세계적으로도 탁월한 연구성과의 중요성은 마케팅전략 중 하나인 포지셔닝 전략과도 같은 이치다.
'기초 연구와 세계적인 연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질문에 세계적연구성과를 낸 연구자나 기초과학분야 연구자들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당장 어디에 어떻게 쓰일수 있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십중팔구 이어지는 질문은 '노벨상은 탈 수 있을까?'이고 그 다음은 '실제 용도도 없고, 노벨상도 못 탄다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냐?'일 것이다.
이같은 질문의 저변에는 연구비 투자에 비해 효율이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연구환경 때문일 것이다. 연구논문이 발표된지 40년이 지난, 200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시모무라 오사무(下村脩)교수가 그랬다.
해파리 박사로도 알려진 시모무라 오사무 교수는 1962년 해파리의 일종인 '에쿼리아 빅토리아'로부터 녹색형광 단백질(GFP)을 처음 추출해 냈으며, GFP가 자외선 아래에서 녹색 빛을 낸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당시 GFP가 어디에 어떻게 이용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1992년 미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GFP의 유전자를 해석하면서, GFP 덕에 신경세포가 어떻게 자라나고 혹은 암세포가 어떻게 퍼져나가는 지와 같이, 예전에는 관찰할 수 없었던 생체 내 현상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 GFP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신경세포가 파괴돼 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수단으로까지 발전했다. 시모무라교수는 GFP발견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원천기술과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의 과학인재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국가과학자다. 여기는 고위험과 고수익이라는 위험이 따르고, '아직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냐?'는 식의 조급함과 경제성을 강조한다면 국가과학자 사업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수 밖에 없다. 과학기술계에도 여유가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지 않고, 이미 형성돼 있는 연구분야에 적당히 끼어드는 '미투(me too)' 전략으론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 길이 없는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 국가과학자의 길인 것이다. 이같은 미지의 개척정신으로 최고가 아닌 최초의 길을 닦아야 하는 것도 국가과학자에 부여된 미션 중 하나다.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JST) 마사시 후루가와 박사는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한 최초의 지구인이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지만 두 번째로 달에 디딘 사람이 누구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스마트폰의 경우 삼성의 품질이 좋을 지는 최초의 스마트폰은 아이폰이다”는 말로 연구분야 역시 최고도 중요하지만 누구도 해보지 않은 최초의 연구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권은남 기자 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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