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차준 대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소통의 곤란이 어찌 교육 분야에만 국한되겠는가? 요즘 정치,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소통이 중요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지금이 바로 불통의 시대라는 반증이다.
법조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법정에서 판사의 막말파동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여론이 들끓고, 이제는 문제 법관을 징계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변호사 단체의 법관평가 내용을 보면, 일부에서는 “고압적이다, 조정강권이다, 지나친 예단피력이다” 하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법정에서의 이런 소란의 이면에는 소통의 파탄이 있다. 결국 소통이 안되면 고통이 온다.
돌이켜 보자, 지금의 중장년이 교육받았던 1980년대까지는 가부장적 상명하복의 시대로 1등을 추구하는 결과지상주의 가치를 추구하였다. 소통도 일방통행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결과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지금 그때와는 다른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이제 소통은 결과주의가 아니고 행위주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에 걸맞게 더 업그레이드된 소통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법조계의 기존 사법교육 체제에서는 판결, 공소장 작성 교육이 중심이었지, 법리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인정론이나 재판진행 및 법정에서의 소통은 각자 현장에서 눈치껏 배우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법관마다 천차만별이었고, 이것이 요즘 발생하는 문제의 먼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는 법조계도 소통방법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이다. 소통을 잘하려면 관점을 바꾸고, 걸맞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첫째, 소통의 관점이 바뀌어야한다. 지혜로운 재판의 대명사 솔로몬 왕의 기도문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보자. 예전 성경에서는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번역되었는데, 최근 개역된 성경에는 직역하여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로 번역되었단다. 이는 솔로몬 재판의 핵심이 듣는 마음에 있고, 이것이 법정에서의 소통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평정한 마음으로 당사자의 말을 듣는 인내심 속에서 지혜의 빛이 떠오른다.
둘째, 법조당국은 '처리건수' 통계에 의존한 판ㆍ검사의 독려 방식을 바꾸자. 70년대식 월,연차 통계와 남과 비교를 의식한 '껀수떼기'식 사건처리가 법조의 소통 수준을 구태의연하게 만들고 있다. 조정건수의 통계와 강조가 고압적 조정의 원인이기라는 지적도 있다.
셋째, 시차제소환을 철저히 시행하자. 법정에서 부드럽게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재판당사자에게 자신만의 재판이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라는 것이다. 여러 사건을 한꺼번에 소환하여 오래 기다리게 하다가, 정작 자신의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제지당하거나 재촉한다면 누구나 불만이 바닥에 깔리게 될 것이다.
넷째, 재판절차를 표준화하고 법정소통에 관한 정기적 세미나를 하자. 아직도 재판부마다 절차와 진행에 차이가 있다. 외부에서 모범적으로 진행한다고 평가받은 재판부의 진행 방식을 공동으로 방청하고 이를 모아 재판 절차를 표준화하면 어떨까? 그리고 여름이나 겨울 휴정기에 법정소통에 관한 세미나로 학이시습(學而時習)하면 즐겁지 아니하랴!
국민은 처리건수 통계에 관심 없다. 이제는 국민 각자 사건의 적정한 처리에 관심을 돌릴 때이다. 근간 검사들의 줄 잇는 징계와 형사처벌, 각종 영화에 비친 법원의 모습, 다양한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법관들의 언행 등을 보면 지금 마르틴 루터의 반박문이 등장할 때임을 알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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