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 |
가족끼리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자 딸은 스마트 폰으로 척척 예매를 한다. “참, 돈 보낼 곳이 있는데.” 갑자기 생각난 듯 아내는 스마트폰을 켜고 순식간에 돈을 보낸다. 작게는 이런 순간들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사람들도 그 흐름에 맞게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데 나만 혼자 그 빠른 변화의 물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마다 불쑥불쑥 불안하다.
요즘 '힐링'이 대세라는데 연초에 두 번의 여행을 통해 마음의 평안과 치유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가족들과 2박 3일의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가족들과 다녀온 제주도는 출장차 몇 번이나 혼자 왔었던 제주도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나에게 보여줬다.
다 아는 것처럼 제주도는 200만 년 전 신생대 화산대에 의해 생성된 섬으로 그때의 원형들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세계문화유산인 거문오름, 작지만 평화스러운 섬 우도. 제주도 남단에 있는 송악산 올레길을 가족들과 유유자적 걸으면서 더할 나위없는 감동과 평화를 만났다. 나뿐아니라 누구라도 웅대한 자연의 앞에 서면 한 치 앞만 보고 살아온 자신이 보일 것이다. 덕분에 내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자연은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인간에게 끊임없이 삶의 답을 주고 있다. 제주의 광활한 자연은 불안감과 억눌림으로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초심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작은 것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는 것은 아닌지, 나를 속속들이 돌아보게 했다.
지난 주말에는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묘지에 다녀왔다. 100년도 훨씬 전에 우리나라의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를 위해 우리 땅을 밟았던 180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이곳에 묻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교사들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학교를 세우고 기독교와 의료봉사에 앞장선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렌터, 헐버트 일가 등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의미 있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갔던 그곳에서도 예상치 않게 내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를 만났다. 바로 그들의 무덤에 새겨진 묘비 때문이었다.
켄트릭 선교사의 묘비에는 “만약 나에게 줄 수 있는 생명이 천개나 있다면 이 모두를 한국에 바치겠다”, 헐버트 선교사의 묘비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고 새겨져 있었다.
동물도 고향에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데 무엇이 그들을 낯선 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게 했는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그들의 애절한 마음은 방문객의 마음에 울컥 감동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믿은 진리와 가치는 그들의 행동과 돌에 새겨진 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빠른 것에 눈을 돌리기 바쁘지만 진리와 지혜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변하지 않아 행복한 나라라는 영국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빠른 정보를 얻기 위해 하는 인터넷은 사색을 죽인다. 깊은 사색이 오히려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천천히 가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정확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 직접 살아본 적이 있는 나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빠름, 빠름'을 아예 노래하는 요즘이다. 나는 두 번의 여행을 통해 빠름에서 느림 쪽에서 되도록 비켜 서 있기로 했다.
영화가 보고 싶으면 영화관 앞에서 표를 끊고 영화 시간을 기다려 보려고 한다. 돈을 보내야 할 때에는 은행에 가보려고 한다. 나에게는 정겹고 성실하고 정직한 가족이 있고 나를 가치 있게 여기게 해주고 존경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이제 '변하지 않는 가치들' 앞에서 나의 근거 없는 뒤처짐에 대한 불안감을 치유해 보고자 한다.
2013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많은 것들이 희망차게 시작될 것이다. 우리 모두 '변하지 않는 가치'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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