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적벽대전2'에서 유비의 책사 제갈량이 손권과의 동맹 후 불리한 전세를 역전 시키기 위해 지략으로 빈 배를 이용해 10만개의 화살을 구해오는 장면. |
역사상 가장 성공한 책사는 촉나라를 세운 유비의 제갈량이라 할 수 있다. 앞선 춘추전국시대 최고 책사로 꼽히는 이는 범증(范增)과 장량(張良)이다.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책사들이다. 당대 최고의 책사들이었지만, 주군들에 의해 두 사람의 운명은 갈렸다.
한반도 역사에서도 많은 책사가 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백제의 근초고왕, 신라의 진흥왕 등 삼국시대 최고의 왕들 뒤에는 여러 명의 책사가 있었다. 어지러웠던 후삼국시대, 후고구려 궁예의 종간과 왕건의 태평, 후백제 견훤의 최승수 등의 책사는 역사를 바꿔놓았다.
대한제국을 제외한 가장 가까운 역사인 조선 역시 책사들의 두뇌로 500년 역사를 이어왔다.
그 중 단종을 폐위한 수양대군의 책사 한명회(韓明澮)와 수양대군의 동생인 안평대군의 책사 이현로(李賢)가 있다. 문종이 승하한 후 초기에는 안평대군이 훨씬 세가 크고 앞섰다. 이현로의 지략 덕분이었다. 이현로는 한명회를 천거하려 했었다. 한명회가 백수였을 때다. 하지만, 한명회는 세가 큰 안평보다 수양대군을 택했다. 대결은 불가피했다. 팽팽한 균형을 깬 건 수양대군이었다. 정권 찬탈을 앞두고, 수양이 겨냥한 건 안평이 아니었다. 바로 이현로였다. 결국, 안평은 이현로를 지키지 못했다. 수양과 안평의 승패는 여기서 갈렸다. 항우가 범증을 버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한명회는 훗날 성종까지 승승장구하며 조선 최고의 책사라는 명성까지 얻으며 역사에 기록됐다.
책사들에 대한 후세의 판단은 논란이 많지만, 역사는 지도자와 그 지도자를 만든 책사가 움직여왔다. 그래서, 사람을 알아보는 게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 큰 뜻을 품은 이들은 모두 책사나 참모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이라도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중히 여겨야 한다는 걸 역사를 말하고 있다.
책사를 좌지우지하는 건 바로 민심이다. 역사에는 성공한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가 기록돼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역사에는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는 책사와 그렇지 못한 책사의 운명도 기록돼 있다.
새 정부에도 책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교육감과 지방의원은 물론, 일반 기업이나 사적인 조직에도 책사는 있기 마련이다. 당신은 어떤 책사가 되기를 바라는가.
윤희진ㆍ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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