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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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웃나라 일본은 영어교육과 관련해 어떤 역사를 갖고 있을까? 일본인들의 영어실력은 형편없는데도 불구하고 경제대국이 된 것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으나, 아직까지도 일본의 경쟁력이 세계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의 문학 사회학자 로베스 에스카르피는 '번역은 반역이다'라고 하였지만, 필자는 이를 '번역은 국가번영의 지름길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일본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번역을 통해 대중에게 다양한 문화를 보급하고 이것이 학문의 소통 증대와 발달로 이어져 일본의 경제 발전을 가져왔다는 증거가 있다.
그런데 일본 역시 우리나라 보다 150여년 앞선 1870년대부터 영어공용화론과 번역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우선 일본의 초대 문부성장관이었던 모리 아리노리(森 有禮, 1847~1889)라는 인물은 '일본이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어를 영어로 해야 한다'며 영어의무교육을 관철시켰지만, 결국은 이러한 주장 때문에 국수주의자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시마네현의 마스다 해안에 표류해 왔던 러시아 병사에게 일본의 한 어부가 영어로 말을 걸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마치 오늘날 우리나라의 '영어열풍'과 비슷했던 상황이 100여 년 전 일본에서도 있었던 모양이다.
모리 아리노리와는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던 바바 다츠이(馬場辰猪, 1850~1888)라는 인물은, 일본에서 영어를 공용화할 경우 상류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격차가 생기고 말이 통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영어공용화론에 반대하였다. 결국 그의 주장이 점차 힘을 얻으면서 일본은 번역주의를 택하였다.
이로서 일본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서양 문명을 받아들였고, 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교실로 삼아 수많은 서양 서적들을 대대적으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즉 영어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지식이 담긴 책이 중요하며, 이를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번역만이 최고의 열매를 맺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1870년 정부기관에 번역국을 설치하고 국가가 서양서적을 조직적으로 번역해, 영어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근대적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무렵 일본은 그야말로 번역의 홍수에 빠져 있었던 시대였다. 오죽하면 번역된 책이 8만여 권에 이르자 『역서독법』이라 하여, 엄청나게 쏟아지는 번역서들을 안내하는 책자가 등장했을까.
필자는 오늘날 일본이 19명이라는 아시아 최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원동력을 바로 고도로 누적된 번역의 힘에서 찾고 싶다. 150여 년 전 부터 국가 주도하에 수많은 외국문헌들을 번역하여 공급한 결과, 세계적 연구 성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뛰어난 연구업적 덕분에 다양한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이다.
그런데 번역은 마치 공공재와 같아서 시장에 맡겨두면 효율적인 생산량을 얻을 수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실용서적 위주의 풍토에서는 순수학문이나 전문서적은 출판사에서 수익이 안 되기 때문에 번역물을 취급하지 않으려는 현실이 존재한다.
2013년 대통령인수위원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교육부 산하에 번역국을 두어 지식정보사회에 노출된 다양한 계층에게 전문적인 학술서적에서 대중서에 이르기까지 이를 공급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불가능할 상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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