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미선 편집부장 |
충남도교육청 교육전문직(장학사ㆍ교육연구사) 시험문제 유출 전황에서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다.
지난해 5월 실시한 선발시험에서 A장학사가 교사 2명에게서 수천만 원을 받고 시험 문제를 알려준 혐의로 구속됐고, 시험 출제위원이면서 연루 의혹을 받았던 B장학사는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한술 더 떠서, 시험문제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새어나갔다는 것은 출제경향을 꿰차거나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출제위원 등 3~4명만 공모해도 합격-불합격 당락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는 말일 것이다. 즉 유출된 핵심 키워드에 따라 문제를 짜맞춘 조직적 '매관매직'일 가능성이 높다.
도통 풀리지 않는 교육계 비리, 노력하는 사람들을 절망으로 빠뜨리는 '승진=뇌물' 방정식을 정면 반박할 모범답안은 정녕 없는 것인가. 숨통만 틔우는 '깔딱 처방'으론 고질적 병폐를 뿌리 뽑을 수 없다. 관련자 엄중문책은 물론이고 출제위원의 외부인사 대체, 시험관리 경찰협조 등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아야 한다.
총과 칼을 든 적보다 백배는 더 무서운 내부균열을 보며 '사면초가'의 의미를 곱씹는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사전적 의미로는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이르는 말이다.
초 나라의 항우(項羽)와 한 나라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투던 때 서초패왕 항우는 뛰어난 무예로 당할자가 없었다. 허나 성격이 워낙에 포악한지라 늘 이기는 전투를 하면서도 항우의 군졸는 줄어들고 반면 유방의 군세는 나날이 늘어났다.
'장군'과 '멍군'의 싱거운 결전은 유방의 군세가 압도적 위치였던 그날 그때, 해하에서 벌어졌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유방은 자신의 압도적 군세만 믿고 항우를 공격한다면 패할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결국 그가 뽑은 외통수는 사면초가. 사방으로 포위만 해놓고 초나라 노래를 부르며 초나라 군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기나긴 전쟁에 염증을 느낀 초나라 군사들의 꼬리에 꼬리를 문 탈영은 시작되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항우의 군사는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된다.
무예에 능하고도 마지막 승부수조차 펼치지 못하게 되는 상황, 그 최악의 순간 항우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적군이 아닌 믿고 의지했던 내부 조직의 균열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좌절, 배신, 눈물에는 속수무책인 법이니까 말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e)를 보면 다른 의미에서의 '사면초가'를 느낄 수 있다. 슬쩍 봐서는 단순히 바다 한가운데서 호랑이 한마리와 소년이 함께 생존하여 살아남는 영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진실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망망대해의 구명보트 위에서는 다 거짓이 된다.
사면초가에 놓인 소년이 호랑이와 타협하며 살아남은 믿지못할 '감동우화'는 없었다. 차라리 살기위해 인육을 먹는 '잔혹동화'가 현실적인 법이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맹수같은 자신의 모습이며 “내가 소년이고, 상대방이 호랑이야”라고 소리친다고 해도 시험문제 유출과 같은 비리들은 결국 통제하지 못한 내부의 잘못이다.
사실 충남교육청은 2003년 당시 강복환 교육감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데 이어 2008년에는 오제직 전 교육감이 인사청탁 수뢰 혐의 등으로 교육감직에서 사퇴했던 전력이 있다. 교육감이 바뀔때마다 인사비리가 터진 꼴이다.
이렇게 까지 심할줄 몰랐다는 핑계도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고질적 관행으로 포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특히 '충격'이니 '멘붕'이라 외치며 '개혁과 혁신'에 목소리 높이다가도 여론이 시들해지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묻혀버리는 솜방망이 처방은 용납할 수 없다.
'사면초가'의 위기를 날려버릴 수 있는 충남교육의 확실한 외통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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