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영 공주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한 학생이 보낸 메일이다. 평소 학생들 메일은 가뭄에 콩나기다. 그러나 학기말엔 예외다. '성적 이의신청 기간'에는 소나기 퍼붓는다. 위와 비슷한 하소연이 수없이 뜬다. 학기말마다 치르는 홍역이다. 대다수 교수가 앓는다. 한데, 성적 부풀리기 '꼼수메일'일 수도 있다나! 장학금을 목표로, 취업을 핑계로….
산더미처럼 쌓인 시험지 뭉치를 뒤진다. 쪽지평가, 중간고사, 기말시험, 과제물, 출결 상태, 수업 태도 등등. 이의신청한 녀석의 것을 찾아야 한다. 150여 명 답안지 600여 개를 헤집는다. 찾는 데만 두어 시간 걸린다.
'혹시, 잘 못 채점한 건 아닐까?' 한 줄 한 줄 점검한다. 이 잡듯 뒤진다. '덧셈이 잘못된 걸까?' 다시 셈한다. 이상 없다. 옳게 채점했다. 개떡같이 써 놓고서는 찰떡으로 여기는 거다. 대폭 올려 줬는데도…. 그 녀석이 미워진다. 팔자타령 나온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며…!
한때는 선생을 신선처럼 여겼다. 선생질 할 만 했다. '성적은 신성불가침'이었다. 어찌 감히 점수에 대해 불만을…! 이의신청은 꿈도 못 꿨다. 부들부들(BDBD)이든 시들시들(CDCD)이든 학점만 나오면 감지덕지다. 잘 나왔으면 고맙고, 못 나왔으면 내 탓이다. 우스개가 있다. 학생들 시험지를 선풍기로 날렸다나. 멀리 날아간 놈은 D학점, 가까이 떨어진 녀석은 A학점이라고…. 깨알 같이 썼으니 연필 자국 무게로 평가했던 걸까!
요즘은 어떤가.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서일까. 글씨가 괴발개발이다. 채점하려면 곤욕이다. 쉬이 읽어지지 않는다. 30분 정도만 읽으면 눈이 가물가물. 괜스레 안경알만 닦아댄다. 한 시간만 채점해도 눈알 빠진다. 성적 입력도 징검다리 건너기다. 독수리 타법이기에…. 자판 두드림이 끝나도 끝이 아니다. '이의신청 기간'이 도사리고 있다. 학생들은 기대치보다 안 나왔으면 못 참는다. 메일로 문자로 이의제기 쏴댄다. 이의신청한 학생에게는 곧바로 응답해야 한다.
답글 보냄에는 신경 쓰인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문구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두세 건만 응답해도 하루가 훌쩍 지난다. 한 주일 내내 응답하다 보면 파김치 된다. '아아~!/ 어쩌란 말이드냐/ 4년 졸업반이고/ 직장 잡았다기에/ 수업에 좀 빠져도/ 답안지 꽝이라도/ 과제물 참고하여/ 상대평가 비율로/ B학점 주었건만/ 어쩌고 어쩌라고/ 점수 올려 달라고/ 선처 기대한다고/ 아아~!/ 어찌하란 말이냐/ 성적이란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느뇨/ 사연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일진대/ 아~ 어쩜 좋으냐/ 꼼수메일 아니지….'
디지털시대라서 그런가. 학생들은 '정보의 달인'이다. 10여 년 간 시험문제 자료를 갖고 있다. 과거 문제와 비슷하게 출제하면 낭패다. 학점 배분이 곤란하다. 상대평가니까. 쉽기라도 하면 더 난리다. “자신 있게 썼는데…”라며 이의신청 빗발친다. 어쩌랴, 어렵게 낼 수밖에. 꼬고, 비틀고, 헷갈리게, 함정 파서 문제를 내야 한다. 꼼수 부려야 한다.
우린 '꼼수세상'에 산다. 공갈젖꼭지 물리는 꼼수육아로부터, 점수만 올리려는 꼼수교육에, 사이버강좌로 쉽게 따는 꼼수학점에, 연구실적 올리려는 꼼수논문에, 꼼수상술, 꼼수선거, 꼼수정치, 꼼수메일, 꼼수점수, 꼼수문제…. 오죽하면 '나꼼수' 사이트도 있을까. 꼼수 난무하는 세상 누굴 탓하랴! 디지털사회의 병폐인 것을~. 나부터 꼼수선생인 걸….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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