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의 불편함은 그들의 꿈이 교사라는 데 있지 않다. '그냥' 교사라는 데 있다. 나는 아이들과의 첫 대면에서 항시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다. 그럼 '좋은' 교사라고 답한다. 옳거니, 나는 또 좋은 교사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미칠 지경에 이른다. 교사면 그만이지, 좋은 교사면 그만이지 또 무엇을 말하라는 것인지 난감해하는 낯빛이 역력하다. 마지못해 풀어낸 '좋은'에는 놀랍게도 많은 뜻이 숨어 있다. '친절한'이나 '소통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마음을 잘 헤아리는', '칭찬을 많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는', 그리고 '잘 가르치는' 등의 의미도 포함된다. 듣고 보면, 아이들이 되고 싶은 좋은 교사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좋은'의 의미는 영 다르다. 불편함의 진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다시 풀어낸 '좋은'에는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과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 방학이 있는 것, 연봉이 많은 것, 비교적 긴 정년이 보장되는 것 등의 의미가 깔려있다. 한 마디로, 적게 일하고 많이 거둬들이며 더 오래 할 수 있는 교사가 직업으로 좋은 솔직한 이유다. 근로 빈곤층(working poor)과 내집 빈곤층(house poor)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행복한 베짱이를 꿈꾸는 솔직함이 어찌 아이들만의 잘못이랴. 형편이 이러하니 교사의 꿈을 미끼삼은 취업사기가 끊이지 않고 횡행활보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전국의 유ㆍ초ㆍ중ㆍ고교 및 대학 교원 등 3271명을 대상으로 교원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선생님 자신이나 동료교사들의 교직에 대한 만족도 및 사기가 최근 1~2년간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떨어졌다'가 2009년 55.3%, 2010년 63.4%, 2011년 79.5%, 2012년 81%로 각각 나타났다. 이는 교실붕괴와 교권추락 현상에 따른 여파일 것이다. 어떤 교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나의 질문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교사의 꿈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고자 하는 것이다. 81%의 불만족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꿈이 선택될 것에 대한 곡진한 바람이다.
꿈은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예상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등대가 된다. 그래서 마음에 품고 있는 꿈이 원대할수록 모험심은 웅대해지며, 그 모험심은 현재 행위를 이끌어낼 만큼 강력하다. 지난 14일자 '동아닷컴' 영상에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길'로 스페인 말라가 인근의 '엘 카미니토 델 레이'가 실렸다. 엘 카미니토 델 레이는 두 폭포를 연결하는 오솔길로, 이곳에 건설된 수력발전소 근로자들이 이동하기 위해 1901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905년에 완공됐다고 한다.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이 길은 최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위험천만한 이 길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과연 우리 아이들의 꿈에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는 모험심이 얼마나 힘차게 작동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따금 아이들에게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어주곤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오늘을 지키려고 하면 진취의 마음은 없어지고 오늘의 안일을 탐하면 모험의 기운은 사라진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원하는 길을 갈래요!”, “내게 맞는 일을 하고 싶어요!” 호기 등등하게 말할 수는 없는 걸까. 형형색색의 꿈들이 다시 돋아 비바람에 흔들리고 젖으며 꽃 피길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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