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씻개도 계절에 따라 달리 썼는데, 여름철 나뭇잎이 무성할 때는 부드럽고 넓은 나뭇잎이나 호박잎을 따서 쓰거나 부드러운 풀잎을 뜯어 모아서 쓰곤 하였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애증관계를 상징하듯 꺼끌꺼끌한 줄기와 잎을 가진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의 풀도 있다. 겨울철에는 이렇다하게 쓸 만한 밑씻개가 없었다. 대개의 경우, 뒷간이 바깥마당 끝 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땔감으로 쓰기 위하여 짚단을 집채처럼 쌓아 놓은 짚가리가 뒷간 앞 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짚가리에서 지푸라기를 몇 가닥 뽑아 부드럽게 비벼서 쓰거나 볏짚 아래쪽에서 훑어 낸 부드러운 검부러기를 밑씻개로 쓰곤 하였다. 심지어 새끼줄을 잘라 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차츰 신문지나 잡지책들이 늘어나면서 신문지나 잡지책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한 쪽 구석에 담아 놓고 쓰곤 하였다. 심지어는 아이들의 교과서와 공책 등을 잘라 쓰는 경우도 간혹 있어서 난리가 나곤 하였다.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아주 부드러운 종이로 만든 달력이 아닌 일력이었다. 이 일력은 하루하루 날짜를 떼는 달력으로 매우 두툼하였고 하루가 지나면 한 장씩 떼어 내는 것이었다. 이 일력은 주로 한의원이나 금은방에서 단골손님들에게 나누어 주던 것이었는데, 시골에서는 매우 귀한 달력이었다. 이 일력은 그 크기가 컷을 뿐만 아니라 매우 부드러운 고급 종이로 만들었기 때문에 밑씻개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지금이야 휴지로 쓰는 종이의 종류들도 하도 많아서 용도에 따라 가려 쓰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류를 가릴 것도 없이 종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두 겹 세 겹 고급화장지를 쓸 때마다 옛일을 돌아보며 아껴 쓰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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