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시뇨리아광장의 코지모 데 메디치(1389~1464) 기마상. |
모두가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피렌체의 천재 예술가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엔 메디치 가문이란 든든한 후원이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14~15세기에 걸쳐 직물교역과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기 시작해, 피렌체 공화국을 통치하기에 이른다. 세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과 두명의 프랑스 왕비(마리 드 메디치, 카트린 드 메디치)를 배출했으니 당시의 권력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이 위대했던 가문은 돈을 버는데에만 급급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막대한 부를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조반디 디 비치 데 메디치(1360~1429)에서 시작된 천재들과의 교감은 그의 아들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와 손자인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까지 이어지게 된다. 대를 이은 광폭적인 후원은 피렌체를 천재들로 몰리게 했고, 서로를 견제해가며 발전을 거듭, 눈부신 르네상스를 꽃피울 수 있었다.
최근 메디치 가문의 리더십을 조명하는 움직임이 많다. 경영용어에 메디치 효과가 등장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앞엔 대명사처럼 메디치란 이름이 따라붙는다
현대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유럽의 한 가문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 해답을 '진정성'에서 찾고 싶다. 로렌초는 일찍이 꼬마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발견, 그를 아들처럼 거둬들였고, 코시모는 그가 후원을 했던 '친구'도나텔로(조각가)와 산 로렌초 성당 지하납골당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후원 그 이상의 진정성이 그들에겐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CF 문구처럼 혁신은 결국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된다. 노장(?) 박세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대회 1등이 아닌 “여전히 당신이 최고야”라고 믿어준 스폰서였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간의 교감에서 시작되는 착한 후원은 창조와 혁신으로 융합되어 갈것이고, 그렇게 다져진 네트워크는 도시 스스로가 아름답게 성장해 나가게끔 만들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마음으로 이웃과 소통하는 리더들이 많다. 가난한 음악가들을 후원하고, 오지 봉사를 위해 버스까지 구입한 치과 원장님, 숲속 황톳길에 이어 숲속음악회까지 연 주류회사 회장님, 도시숲을 조성 시민에게 기증한 건설회사 회장님, 그리고 매월 수익금의 일정액을 이웃돕기로 기부하는 '착한가게 캠페인'의 자영업 사장님들까지…. 이웃과의 수평적 교감이 아름답다.
시린 경제한파에도 대전의 사랑의 온도탑이 100℃를 훌쩍 넘었다(1월 11일 현재). 이는 지난해 85℃에 비해 15.1℃를 초과 달성한 액수라고 한다. 어쩌면 우린 메디치의 기적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기적을 쓰고 있는것이 아닐까.
연선우·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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