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손톱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다. 발원지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5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손톱 밑 가시 뽑기'를 또 비유로 꺼내들었다. 약속에 따라 중소기업중앙회가 수집한 것에는 가시급(級) 아닌 것이 꽤 많다. 납품가격 후려치기,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진출, 기술 탈취 등은 가시의 경증이 아닌 대못의 고통 영역이다.
박 당선인은 이날 '손톱 밑 가시 빼기' 2탄으로 '신발 속 돌멩이 빼기'를 추가했다. 모래알만한 돌멩이라도 안 빼면 아프고 발에 상처를 낸다. 하지만 박근혜 중소기업 가시가 상징적 순수함에 집착하다 MB의 실패한 규제 전봇대 계열로 흐를까 찜찜하다. 손톱 밑 가시 든 건 알아도 염통 밑에 쉬스는 줄 모른다면 큰일이다.
어느 계열이건 가시에는 눈에 잘 띄는 것과 잘 띄지 않는 것이 병존한다. 가시와 돌멩이가 윤리학에서 악의 개념, 종교학에서 원죄의 개념, 법학에서 불법의 개념이라면 중소기업에서는 이른바 3불(불공정, 불합리, 불균형)의 개념일 것이다. 신발 속 돌멩이도 다르지 않다. 호흡, 갈증보다 발바닥 아래 작은 모래알이 마라토너를 괴롭힌다. 발을 괴롭히는 돌멩이는 곧장 빼버리는 게 지당하다.
때맞춰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은 5년 간 대못 규제에서 손톱 밑 가시 규제까지 3076개를 찾아 1866개를 뺐노라고 주저리주저리 자랑한다. 각 부처는 가시 찾기에 바쁘고 '손톱 밑 가시 힐링센터'라도 생길 판이다. 이러다 대못과 말뚝, 전봇대, 가시와 돌멩이가 엉켜 선별이 어려워질지 모르겠다. 손톱을 깨무는 것, 걱정을 안고 끙끙대는 것을 '손톱여물을 썬다'고도 한다. 그렇듯 중소기업은 외연적ㆍ내포적으로 주눅들어 있다.
한데 단일한 덕목에 빠지면 다양한 덕목을 아우를 수 없다. 빼야 할 가시가 맞는지, 정부가 빼줘야 할지 시장경제가 뺄 일인지는 분간해야 한다. 뭐든 다 빼주다간 경제의 틀을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바꿔 짠다는 박 당선인의 문제의식에 위배될 수도 있다. 가시 빼기는 가외(加外)로 하고 체계 있는 정책이 앞서야 한다. 손톱의 가시가 생인손으로 곪지 않는 한 병원을 무턱대고 찾아 빼지 않아도 웬만하면 낫는다. 돌멩이는 물론 차이가 있다.
'신발에 돌멩이가 들어 있다'는 그리스에서 '양심의 가책'을 뜻한다. 영화 '러쉬 라이프'에서 짝사랑 고백 중에 그런 설명이 나온다. 눈에 잘 안 띄는 비양심의 둔감한 돌멩이까지 제거 대상이다. 제대로 진가와 광채를 드러내려면 가시 빼려다 손톱이나 뽑는 난맥상은 '손톱만큼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아주 작은 것'이 가시나 손톱이라는 기호가 갖는 의미여서 경계할 점이 있다. 바로 사소함의 과잉이다. 정권 인수기와 취임 초는 특히 전체를 조망해야 할 단계다.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