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나의 바람은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바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꿈을 심어 달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왜냐하면 80평생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꿈'에 대한 끈을 놓고 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났던 때는 일제 치하로 일본사람들의 폭정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막연하나마 '독립'의 꿈을 가슴 한켠에 두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독립 후에는 곧바로 남북이 분단되고 온 사회가 사상 대립의 와중에 혼란스러웠다. 좌우익의 격렬한 투쟁 가운데서도 학생들은 새로 독립한 조국의 새로운 일꾼이 되기 위하여 각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곧이어 6ㆍ25전쟁으로 빠져들었다. 전쟁은 그 어떤 대립과 싸움보다도 큰 폐해를 안겼기 때문에 빨리 전쟁이 끝나 평화로운 조국에 살기를 기원하는 꿈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대는 도래했지만 폐허가 된 만신창이 조국은 국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배불리 한번 먹어보는 것'을 최고의 꿈으로 가슴에 품게 되었다. 부모님들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절대 빈곤의 사회에서 배를 곯는 것은 일상이었다.
1960년대 들어 새로운 지도자에 의해 국민들에게 제시되었던 꿈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였다. 우리도 미국이나 유럽의 사람들처럼 배고픈 걱정 없이 잘사는 국가를,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꿈은 모든 국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표가 되었다. 그 꿈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억 만 리 먼 나라에 가서 광부로, 간호사로 열심히 일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베트남 전선에서 싸웠고, 열사의 중동에서 달러를 벌어들였다.
온 국민이 땀과 피눈물의 대장정을 벌였다. 오직 '잘 살아보자'는 꿈을 위해서였다. 어떤 채찍질과 억압보다도 자발적인 꿈은 가장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은 그렇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북한이 오늘날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한 것은 바로 국민들에게 자발적인 꿈을 제시하지 못하고 강제와 억압으로 정책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시 그 꿈을 찾는 일이다.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꿈을 앞세워 다시한번 대장정의 길을 나서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5만원의 보육비를 지원해주고, 어린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점심을 제공해주고, 대학생들에게 반값의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일보다 몇 배 더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일에 있어 성공이나 실천은 그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자신의 꿈을 설파했다. “백인과 흑인이 같은 버스에 타고, 같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회…”,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인종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는, 당시로서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이러한 킹 목사의 꿈은 전 미국으로 번져나가 전체 미국인들의 꿈이 되었으며 50여 년 후에는 흑인 대통령이 나오는 꿈의 실현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지금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꿈'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꿈을 세우고 이뤄가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렸지만 꿈이 있어서 행복했고 살아갈 희망이 있었던 시절을 돌이켜보자니, 새 대통령에게 쓰고 싶은 나의 편지는 '꿈' 단 한 글자로 충분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