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되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사진의 비극이라지만, 이 사진은 내리 몇 년째 봐도 깊은 연민, 비장감이 식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 보는 이를 순간적으로 찌르는 강렬함이 있다. 그래봐야 당사자들, 이번 주 송달되고 있는 12만7000여건의 사정재판 결정문을 나눠 쥔 서해안 주민의 쓰린 심정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것이다.
서해안 피해 주민에게 스투디움이니 푼크툼이니 하는 개념은 결례이며 배부른 분석이다. 그 아픔은 감히 감상으로 마주할 성질이 못 된다. 우리가 코끼리 다리 만지기로 이해하는 태안의 현재적 고통도, 123만 자원봉사자의 수고도 불망(不忘)의 대상이다. 재난에 무슨 '기념'이냐고 뜨악하겠지만 배ㆍ보상과 별도로 기억하고 갈무리하자는 것이다. 그 모델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추천하고 싶다.
대구의 지하철 참사는 잘못된 행동과 대처가 빚은 비극에서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블랙 투어리즘)으로 환생했다. 돈으로 환산해서 연간 경제 파급효과 58억원여원, 화재 및 재난피해 저감 사회적 편익 264억원을 발생시켰다. 거제 포로수용소 기념관, 제주 4ㆍ3 평화공원, 히로시마 평화박물관에서 보는 장소 가치를 얻었다. 지하철 잔해의 '책임자 다 죽여'라는 분노의 낙서마저 관광상품이다. 대상을 코드화, 사회와 화해하는 기능도 수행했다.
최악의 유류사고를 치른 태안도 역사인식과 안전문화 측면에서 중요성이 있다. '종패를 넣고 굴을 기르던 사람, 하늘 비단을 뚫고 비상하던 바닷새도 없다. 물길은 있으나 배는 다니지 않고… 돌멩이 닦는 일과 바다와의 인과관계에 검은 회의가 파도처럼…' 매큼한 개흙과 비릿한 생선 냄새가 사라진 그곳에 자원봉사차 다녀와 필자가 기사화한 소회였다. 간직해야 할 태안의 현장성이란 이런 것들이다.
재난과 비극의 자원화는 특히나 충청도 정서로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볼 일만이 아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킬링필드 현장 등 부(負)의 유산은 인간 잔혹함의 교과서가 됐다.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夕張)시는 파산한 도시 몰락 과정을 상품화해 히트했다. 멋진 실패에 상 주고 평범한 성공에 벌 주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도시로 체험학습 다녀온 지역 공무원들도 있다.
발상의 전환, 역발상의 미학이 성공한 사례다. 생각을 바꾸면 비무장지대가 평화생명지대가 되기도 한다. 태안의 청정해역과 다크 투어리즘 테마는 동시 대비효과가 가능하다. 이재수의 난과 같은 민란 유적, 초등학교 교정에 남은 6ㆍ25 때 탄흔, 남북 충돌 현장까지 관광자원화를 위해 만지작거리는 상황 아닌가.
없는 것도 있는 걸로 만들려고 안달복달이다. 낭만적 거짓말과 소설적 진실을 버무린 수로부인(강릉과 삼척), 변강쇠(함양과 김제)를 놓고 자치단체 간 소유권 논쟁이 가관이다. 섬진강 두꺼비(광양과 하동)도 그렇다. 체험마을로 뜬 태안 남면 원청리는 묘샘, 자라바위, 용새골, 안궁(내궁), 궁앞(궁전) 지명이 있는 고전우화 속 별주부전마을이다. 경남 사천 비토섬과의 실랑이에 거리낄 것 하나 없다.
태안의 이런 유무형 자원을 잘만 섞으면 콘텐츠 차별화가 가능하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는 알래스카는 크루즈 여행 명소로 떴다. 휴양의 즐거움에 반성과 교훈의 참사현장여행을 곁들이면 조선팔도 사로잡는 블랙홀 미모를 갖춘 자연환경과 밀착적인 유대감도 형성된다. 신두리사구 관광객이 늘면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처럼 쓰레기를 주우러 오는 관광객도 모여들 것으로 확신한다.
이 모두 태안 비극이 완전한 과거형일 때의 얘기다. 지난주 유류 사정재판 뒤 이충경 전 어촌계장의 한숨이 전파를 탔다. 5년 전 “한숨이 태산보다 높은 태안 사람들”(이충경 의항2리)로 내 칼럼에 서술된 인물이다. 자원봉사자의 노벨상 추진을 인수위원회(이명박)와 협의한다던 5년 전 약속은 호언이었어도 좋다. 하루바삐 임시국회를 소집해 제대로 된 유류피해특별위원회를 재가동하고, 정부와 함께 금전적 보상과 재난극복기념관(가칭) 설립 작업을 병행했으면 한다. 마이너스(―) 유산 대처법에도 눈떠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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