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21세기에는 종이가 없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고, 그 자리는 컴퓨터가 대신 할 것이다.”
교수님의 선견지명에 당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컴퓨터가 가져올 새로운 세상을 막연하게나마 그려봤던 것 같다. 하지만 '종이가 없어지는 세상'은 손 안에 컴퓨터를 가지고 다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당시엔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종이가 사라진다는 걸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강산이 몇 번 바뀌지 않은 지금, 사람들은 걸어다니면서 TV를 시청하고 얼굴을 보며 전화를 한다. 국내 한 가수의 노래는 순식간에 세상 밖으로 퍼져 지구촌 곳곳에서 똑같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컴퓨터는 신문업계에도 환골탈태를 요구하고 있다. 스마트기기는 종이로 전하는 세상 소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실시간으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빠르고 신속하게 뉴스를 전해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 신문업계는 이제 종이로부터의 엑소더스를 받아들여야 한다.
본지가 홈페이지, 트위터 등을 통해 첨단미디어로 발벗고 나선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본지 서고도 열외일 수 없다.
60여 년 역사를 가진 중도일보 서고엔 1956년부터 제본된 신문들이 보관돼 있다. 색이 바래고 일부는 파손됐지만 그 안엔 과거 대소사가 뚜렷이 존재한다. 기사를 찾다 딸려 나온 옛 사건이나 미담에 눈을 뺏겨 타임머신 여행을 하는 일도 허다했다. 자료를 찾느라 뒤적거리다보면 먼지와 함께 일어나는 퀴퀴한 냄새는 마치 보물상자를 여는 듯한 설렘도 줬다. 먼지 쌓인 종이신문이 주는 맛이었다. 아쉽지만 그 맛을 느끼는 것도 이제 그만이다. 본지는 2012년 말 종이신문 보관(신문제본)을 중단했다. 경제성을 비롯한 여러 이유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제 신문 원본은 본지 홈페이지에서 PDF로만 확인할 수 있다.
2053년 어느 날, '중도일보' 종이신문을 서고에서 뒤적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땐 메모를 할 때 스마트폰보다 연필과 종이에 손이 먼저 가고,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전자신문보다 종이신문을 먼저 찾는 이도 없을 테니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다.
김은주ㆍ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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