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호 전 동구의회 의장 |
세계에서 112번째로 작은 한국에서 정치 지도층의 특권은 어찌도 그리 많은지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의 특권을 생각할 때 그들을 신종용어로 '불가리스(可less)계급'이라 칭하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다고 하면서 특권을 누리는 '노동귀족'이 존재하듯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면서 특권을 누리는 '국민귀족'이 있다면 바로 오늘의 정치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련에서는 스탈린 집권 이후에 생긴 특권층 '노멘클라투라'가 우리 국회의원들처럼 높은 소득보장과 많은 특권을 지녀 '다차(별장)족'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노령연금에 가족까지 혜택을 주는 등 시대를 초월한 귀족세력으로 군림하면서 평등한 공산국가는커녕, 결국 소련을 붕괴시키는 빌미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걸 알면서 정치인들이 구시대의 특권을 계급장처럼 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셸푸코의 표현대로 “악마는 곳곳에 도사리고 은밀히 우리에게 다가와 영혼을 빼앗아간다'는 의미 속에 악마는 곧 권력과 특권이다. 권력과 특권에 집착하는 것은 악마와 거래하는 것이고, 자신의 주인인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연봉이 2억원에 다다르니 국회의원도 따라잡겠다며 1억3000여만원을 넘어서고, 대통령의 연금이 매월 1088만원이니 뒤질세라 그네들도 노령연금조로 매월 120만원 정도는 받아야겠다는 발상에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들도 슬며시 만용을 부려본다. 세금에 대한 외경의식은 실종된 채, 어떻게 하면 연수를 빙자하여 공돈으로 해외나들이 할까에 골몰한다. 유권자가 냉담한 채 등을 돌린 사이에 너도 빼먹고 나도 빼먹자는 식이다. 함께 빼먹는 동안은 서로 아옹다옹 싸울 필요도, 그럴 여유도 없다. 사소한 것 가지고도 피터지게 잘 싸우는 정치권이 특권을 챙기는데 있어서는 여야, 좌우할 것 없이 불현듯 극적인(?) 합의를 잘 만드는지, 15년째 지방의원을 하는 필자로서도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이러니 프로 코미디언인 고 이주일님조차 탄복할 정도로 웃기는 직업층 아닌가!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는 아들이 위독하자 그만 혼비백산하여 공사를 구분 못 하고 업무용 헬기를 썼다가,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그 비용을 지불했단다. 어차피 계약직이라면 스웨덴 출신의 국회의원을 프로스포츠 용병선수처럼 사오자는 말이 유권자들의 입에서 제발 나오지 않길 바란다. 국제의원연맹의 최근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이 무료교통편이나 면책특권 등 기존의 특권들을 포기하는 추세임을 잘 일깨워주고 있다.
700년전의 백년전쟁을 돌아본다. 영국에 의해 점령당한 프랑스의 칼레시민들이 오롯이 살수 있었던 것은 6명의 자발적인 교수형 자원자가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자청한 사람들은 칼레시의 가장 큰 부자를 비롯하여 시장, 법률가 등 귀족층들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칼레시민 모두를 구하고자 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이들은 모두 사면되었고, 영웅들의 처참할 듯 아름다운 사연은 500년이 지난 후에 로댕의 신들린 손으로 '칼레의 시민'으로 부활하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특권을 밥 비벼먹듯 하던 왕조시대에도 국민을 생각하여 특권을 털고자 한 것이다.
요즘처럼 많은 눈이 내린 산야를 대하다 보면 서산대사의 선시가 문득 앞을 가로막는다. “함부로 발자국을 내지 말라! 네가 찍은 발자욱이 후세의 이정표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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