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집은 이제 그 의미가 바뀌어 일상의 휴식과 삶의 아름다운 기억을 만드는 정주의 가치보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 뿐만 아니라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투자의 대상으로 변질돼 버렸다. 어떤 이는 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다른 이들은 자녀교육을 위한 좋은 학군이 집 선택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집은 생활을 위한 거주 수단으로 기능을 하고 있지만, 정작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은 못 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기능적이고 효율적이며 편리하고 아름다운 집을 추구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백년 살고 싶은 마음은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기능만이 우선시돼 거주자의 직업과 생활패턴, 취미, 구성원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등이 간과되는 획일적인 주택을 양산하고 있다. 거주자 삶의 가치보다 고급스러운 가구와 최신형 가전제품, 각종 장식품이 그 가치를 대신하고 있다. 이런 집에서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삶의 공간적 고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 이상 우리의 그림 같은 집을 꿈꾸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사회는 점점 복잡하고 다양화되며 도시화가 이뤄지고 있다. 주거지의 부족 등을 해소하기 위해 아파트 등 획일화된 공동주택이 늘어가고 단독주택은 점점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극도의 핵가족화로 1ㆍ2인 가구가 늘어가는 추세다. 사회적이고 도시ㆍ건축적 문제로 중요한 일임에도, 주거형태는 설계과정부터 경제성만을 추구하는 시공논리에 종속됐다. 인문과 환경적인 측면 등을 고려하지 못한 주거 형태는 인간관계를 더욱 단절시켰으며 개개인이 공간적,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주택의 양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족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각각의 섬같이 떨어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같은 공동 주택들은 주민 간의 교류가 없어져, 단순히 주택의 '집합'과 같다. 최근에는 아파트 건설 시 아파트 단지 전체를 공원화하거나 주민공동시설들을 마련하며 주민 간의 단절된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은 공간이 아닌 개발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어떤 삶을 담을 것인가. 공간이 바뀌면 그 속의 사람도 바뀌고 생활도 바뀐다. 집에는 집주인의 삶의 가치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몸뿐이 아니라 생각이 살아야 할 곳이 바로 우리의 집이다. 우리가 어떤 유형의 집에 살든지 집은 공산품처럼 소유되고 소비되는 물건이 아니라 각자의 소중한 삶을 담아내고 가족과 이웃 간의 건강한 커뮤니티를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문화, 그 자체가 돼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과거 토건 위주의 개발논리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우리의 삶의 가치를 되찾는 건축문화로 탈바꿈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요즘 다양한 종류의 설계 작업들을 진행 중이다. 수많은 작업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은 대지 서른 평 위에 연면적 스무 평 남짓의 작은 집이다. 건축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낡은 집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 그의 작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면서 따뜻한 햇볕을 비치게 하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로 하루하루가 너무 짧다. 건축주와 더 많은 대화와 고민을 나눠야 할 만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내 마음에서는 벌써부터 완성된 집의 작은 마당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마실 시원한 맥주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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