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학창시절 주말은 친구들과 만나 야구장과 축구장, 극장 등에 자주 놀러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시험 때는 못했지만, 정말 많은 놀거리와 진정한 휴식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이 땅의 많은 학생들은 꿈꾸며 보내야 할 소중한 시간을 휴식도 없는 공부로 보내야만 하는가? 세계적으로 중등교육의 빛나는 성과를 내고 있는 우리나라는 고등 교육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보여준 게 없다. 창의력이 세계 문화와 과학 발전의 키워드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시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름의 상상조차 허락되지 않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부모나 친구들과의 다양한 놀이 등이 주가 되어야 할 영유아들부터, 일상은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기, 자기 나이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수학적 사고를 강요당하고 있다. 거의 학대수준의 학습량, 거기에 우리의 많은 대학들은 변별력을 이유로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뛰어넘는 문제를 학생들에게 출제한다. 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터무니없는 논리 아닌가 그들은 비정상적 교육을 우리 학생들에게 요구한다. 이는 학원가에서는 너무도 좋은 마케팅 요소고 그들은 오늘도 선언적으로 선전한다. 선행교육 만이 살 길이라고. 학원들은 대다수 앞서가는 아이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한다.
많은 선진 국가에서는 어느 대학이라도 갈 수 있는 평균적 아이들도 일찌감치 2류나 3류가 된다. 학원은 열심히 다니지만 그들은 우울하다. 우리 기성세대는 더 이상 우리아이들을 공부 외에는 희망이 없는 막다른 곳으로 몰아서는 안된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옥상으로 올라가는 일 만은 막아야하지 않는가. 절대로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삶을 포기하는 길로 유도해서는 안된다. 학문적 성숙도를 갖춘 많은 나라들은 정신과 육체적으로 미숙한 아이들에게 이러한 가학적 압박을 하지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 학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현상도 이런 비정상적 교육시스템이 낳은 현상으로 본다.
억압받고 억눌린 아이들의 영혼(이는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이나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이나 똑같다)은 심리적 보상을 받기 위해 약한 공격대상을 찾는 지도 모른다. 전 후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고 따라하며 지금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어느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산업과 기술력 등 다방면에서 세상을 리드해야할 맨 앞줄에 서있다. 이제부터는 남들이 안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대학 입학만을 위한 교육열(?)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얼마 전 어느 포털사이트에서 화제가 됐던 미국 명문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적혀있는 낙서내용은 우리나라 수험생들의 각오와 너무도 비슷했다.
세계를 이끄는 대학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처절한 고행의 길을 의미한다. 심오한 진리탐구와 세상의 변화를 위한 새로운 학문 창출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대학 입학 전까지 그 많은 학습량을 소화하고 지칠 대로 지친 심신으로 영광의 길로 들어선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는가? 또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제 우리는 우리의 교육을 보다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진지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 이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든가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이나 지속적 발전' 등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장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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