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인 증삼(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아이가 따라 나서며 징징거렸다. 아내는 아들에게 “집에 있으면 돌아와 돼지를 잡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증삼이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아내는 기겁하여 “아이와 장난친 것”이라며 증삼을 말렸다. 그러나 증삼은 “그대는 아이에게 장난치면 안되오. 아이는 지각이 없어 어른을 따라 배우는데, 그대가 아이를 속이면 아이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는 꼴이 되고, 아이가 부모를 믿지 못하게 되니 가르침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요”하며 돼지를 잡았다.
돼지를 잡은 날 밤 아들이 자다 말고 밖으로 나가기에 증삼이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친구에게 책을 빌렸는데, 오늘까지 돌려주기로 약속했다.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려 돼지를 잡는 것을 보고, 저도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녀오려 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신뢰에 관해서는 서양도 다를 바가 없다.
스위스 루체른에는 사자가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모습을 조각한 '빈사의 사자'상이 있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프랑스국왕 루이 16세 일가를 지키다가 죽은 스위스 용병 700여명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1821년에 세운 기념비다.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 중 하나인 스위스지만, 오랜 과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국토 대부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척박하여 끊임없이 가난이 이어졌다. 그래서 발달한 산업이 군인 수출, 즉 용병 산업이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많은 남성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해외로 나가 싸웠던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투아네트가 시민혁명군에 포위되었을 때 베르사유 궁전을 마지막까지 지킨 것은 프랑스수비대가 아니고 궁전 경비용역계약을 맺은 스위스 용병이었다. 프랑스 수비대가 도망간 후 시민 혁명군이 스위스 용병에게 퇴각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스위스 용병들은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그 제의를 거절하고 남의 나라 왕과 왕비를 위해 끝까지 용맹스럽게 싸우다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이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는 글이 씌어 있었다 한다.
또한 스위스 용병은 1506년 1월부터 로마교황의 경호를 맡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500년 동안 목숨을 걸고 교황과 교황청을 지켜오고 있다. 1527년 스페인 군대가 교황청을 공격했을 때, 당시 용병 절반 이상이 전사하면서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도피를 도왔으며, 나폴레옹 군대가 로마를 침략했을 때인 1798년 교황 피우스 6세를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 대부분 전사했다고 한다. 이런 스위스 용병의 이야기는 이자는커녕 돈 보관료를 받아가면서 세계 부호들의 자금을 관리해주는 스위스 은행들의 신용도와 안전도가 왜 세계 제일이 되었는지 잘 말해 주고 있다.
자신의 신용만이 아니라 자손의 신용까지 생각한다는 계약준수의 정신은 요즘 신뢰 부재, 신용 불량에 시달리는 우리 시대에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과제다.
위 예화가 말하고자 하는 신뢰란 법가, 병가, 유교뿐 아니라 법치주의에서도 핵심요소이다. 법치주의란 법을 지켜야 한다는 형식적인 차원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여 신뢰할 수 있으며 기회균등이 보장되고 페어플레이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가치고, 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상비하여 체득 해할 필수 개념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바둑에서의 행마법, 선진축구에서의 포백시스템의 이해, 성경의 주기도문, 금강경의 무주상 보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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