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의 아버지 장호철씨는 8일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장미란) 본인이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은퇴 기자회견은 10일 소속팀인 고양시청에서 열린다.
1999년 아버지 장씨의 집요한 설득에 처음 바벨을 잡은 장미란은 곧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너머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고등부 시절 무한한 가능성을 선보인데 이어 2002년 일반부로 출전해 용상과 합계 부문에서 우승해 역도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03년부터는 국내 대회에서 적수가 없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체전 역도 여자 일반부의 모든 금메달은 장미란의 차지였다. 전국체전에서만 총 38개의 금메달을 수집했다.
국제무대에서도 장미란의 활약은 빛났다. 사실상의 국제무대 데뷔전이었던 2002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도 당시 세계 최강이던 탕공홍(중국)에 밀려 2위에 머물렀지만 이후 장미란은 무섭게 성장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탕공홍에 밀려 은메달에 만족한 이후 2005년부터 4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는 장미란의 차지였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많은 경쟁 상대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두 적수가 되지 않았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에 이어 2010년과 2012년에는 각각 광저우아시안게임과 평택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역도계의 4대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한 때 세계기록을 모두 보유했을 정도로 세계 최강의 기량을 뽐냈던 장미란이지만 세월의 무게는 견디지 못했다. 잦은 부상도 발목을 잡았다. 결국 2010년 이후 무서운 성장세를 보인 타티아나 카시리나(러시아)와 무솽솽(중국) 등에 밀려 국제대회에서 힘든 경쟁이 시작됐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는 메달 획득이 좌절되는 아픈 경험도 했다.
올림픽 이후 출전한 전국체전에서 다시 한번 3관왕을 차지했지만 장미란은 미련 없이 정든 바벨을 놓기로 했다.
장미란은 은퇴 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포츠장학재단과 학업에 매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컷뉴스/중도일보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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