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유행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털실로 짠 모자와 목도리ㆍ장갑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쯤 가지고 있던 것이 털장갑이었다. 요즘의 장갑은 다섯 손가락을 하나 씩 집어넣을 수 있는 장갑이지만 그 때는 털실로 한코한코 떠서 만든 엄지손가락만 따로 끼울 수 있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모아서 한 번에 넣을 수 있도록 만든 장갑이었다. 이 털장갑은 따로 따로 가지고 다니면 잃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기다란 털실 양 쪽 끝에 장갑을 매달아서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녀야했다. 여기에는 어머니나 누이의 따스한 정이 배어 있었다.
겨울철이 되면 솜씨 좋은 어머니나 누이는 털실과 뜨개바늘을 구해서 뜨개질을 하시곤 하였다. 털실의 경우, 새 털실을 사기도 했지만 털실로 떠서 입다가 헤진 털조끼나 스웨터를 다시 풀어내고 끊어진 곳을 이어 길게 만들어 썼다. 뜨개바늘은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것을 구해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당시에 주로 쓰던 대나무로 만든 우산의 우산살을 깎아 만들어 쓰곤 하였다. 솜씨 좋은 어머니와 누이들은 털실과 뜨개바늘만 있으면 못 뜨는 겨울용품들이 없었다. 뜨개질을 할 때 손놀림을 보면 어떤 옷감공장의 자동기계를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지곤 하였다. 바느질 솜씨도 뛰어났지만 뜨개질솜씨 또한 비길 데가 없었다. 단순히 밋밋하게 뜨개질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러 가지 아름다운 기하무늬들을 아로 새기듯이 짜 넣은 솜씨야 말로 신의경지 그 자체였다. 그 만큼 지각과 공간감각이 뛰어났다.
이 뜨개질을 흉내 낸 놀이도 있었다. 기다란 실 끝을 묶은 뒤 상대방과 양 손가락사이에 끼우고 차례차례 떠가는 놀이였다. 이 뜨개질놀이는 그렇게 쉬운 놀이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이러한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각과 공간감각을 익혀 가곤 하였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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