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규 대전둔산초 교장, 전 충남서예가협회장). |
조충국을 찾아온 병길은 이렇게 말했다.
“강족을 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장군에게 물어 보라는 어명을 받고 왔소이다.”
그러자 조충국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어디 노신(臣)을 능가할 사람이 있겠소?”
선제는 조충국을 불러 강족 토벌에 대해 물었다.
“강족을 토벌하는데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또 병력은 얼마나 필요하오?”
조충국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옵니다[百聞如一見]. 무릇 군사(軍事)란 실지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오니 원컨대 신을 금성군(城郡:감숙성 난주(甘肅省州) 부근으로 보내 주시 오소서. 계책은 현지를 살펴 본 다음에 아뢰겠나이다.”
선제는 기꺼이 윤허했다.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충국은 기병(騎兵)보다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상주했다. 그 후 이 계책이 채택됨으로써 강족의 반란도 수그러졌다고 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 백행불여일각(百行不如一覺)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만 못하고, 백 번 보는 것이 한 번 행함만 못하고, 백번 행함보다 한 번 깨달음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박일규 대전둔산초 교장, 전 충남서예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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