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역으로 통하는 지하철 통로에서 예닐곱명의 노숙인들이 무리를 지어 종이박스와 스티로폼 박스에 의존해 추위를 피하고 있다. |
많은 이들이 가족 또는 연인과 성탄의 밤을 맞고 있을 무렵, 화려한 은행동의 불빛을 뒤로하고 찾은 대전역.
마지막 열차가 플랫폼을 출발하자 역사 안에 머물러 있던 노숙인들도 하나 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전 1시 15분 동구 대전역 부근의 지하차도
문 닫힌 대전역을 떠나 한 노숙인이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곳은 인근의 지하차도 입구였다.
노숙자지원센터 직원들이 조심스레 다가가 이 노숙인이 잠든 침낭을 두드린다.
침낭 안의 50대 노숙자는 고개만 살짝 내보인 채 경계심을 먼저 나타낸다.
직원들은 찬 바람이 부는 곳에서 잠이 들면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핫팩 등 방풍 장비를 전달하고 자리를 옮긴다.
노숙자지원센터 김태연 실장은 “대부분 노숙자들이 주무시는 곳이 지하차도나 지하철 통로여서 사람들이 지나는 발소리에도 금새 잠이 깨고 잘 수 있는 시간도 매우 짧다”며 “필요한 물품을 건네드리고 바로 이동해야 주무실 시간에 피해를 안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전 1시 30분 지하철 1호선 대전역 통로
대전역으로 통하는 지하철 통로에는 예닐곱명의 노숙인들이 무리를 지어 종이박스와 스티로폼 박스에 의존해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익숙한 듯 이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물은 뒤 감기에 걸린 60대 여성에게 감기약을 꺼내 물과 함게 건넸다.
김태연 실장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자고 해도 어딘가에 구속된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있고, 돈 때문에 병원 치료를 거절하는 경우도 많아 아쉬운대로 약이라도 챙겨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오전 1시 43분 중구 은행동 지하상가 통로
직원들의 발걸음이 한 남성 앞에서 멈췄다.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못봤던 남성이 의자에 몸을 뉘인 채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다른 지역에서 내려왔다는 이 백발의 노숙인은 직원들이 다가서자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직원들이 센터로 이동해 편안히 잠을 청할 것은 권유했지만 남성은 한사코 동행을 거부했다.
그렇게 발길을 돌린 직원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채 노숙인지원센터로 향했다.
이곳에서도 30여명의 노숙인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노숙인들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센터 안으로 들어 선 직원들은 추위로 붉어진 얼굴과 굳은 몸을 녹이려 잠시 히터 주위로 향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오전 4시께가 되자 직원들은 다시 밖으로 나서 눈길을 밟는다.
노숙인들이 깨어날 시간에 맞춰 다시 지원활동에 나서는 길이다.
김 실장은 “지원상담을 하다보면 연간 200여 명 정도는 처음 노숙 생활을 하는 분들”이라며 “이분들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 센터나 구호소에 와서 잠을 청하는 것 조차 꺼리며 한 겨울 추위와 맨몸으로 맞서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나타냈다.
강우성 기자 khaih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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