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용 대전성룡초 교감 |
1982년 초임교사로 발령받은 후, 제자들과 함께하며 차곡차곡 채워간 사진들과 필름은 파일철에, 제자들이 보낸 편지는 사과 박스에 보관돼 있다. 신문에 게재한 교단일기, 방송에 출연한 녹음자료, 편집위원이나 발간위원으로 참여했던 대전교육 소식지와 장학자료집, 강의교재도 필자의 애장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 있다. 필자의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일기다. 올해 쓴 일기를 읽어 보니,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도 있고, 행복하게 했던 일들도 있다. 특히, 필자가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글도 있다.
12월 14일 일기에 시선이 꽂힌다.
'오늘은 정말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많은 아이가 위험할 뻔했어요. 선생님의 아이들이기도 하고, 제 아이들이기도 하지만 오늘 아침 따뜻한 손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이메일 주소 알려 드릴게요.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되세요. 4학년 6반 곽지율 어머니 드립니다.'
필자가 아침에 교통지도를 하신 교통지킴이 학부모에게 사진을 보내기 위해 문자를 보냈는데, 이에 대한 학부모의 답글이다. 당일 교통상황은 심각했다. 새벽부터 내린 비가 도로에 얼어붙어 블랙아이스(Black ice)로 변했고, 크고 작은 빗길 교통사고가 발생해 도로는 차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봉사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찍는데, 아이들이 약간 가파른 횡단보도로 내려설 때 자꾸 넘어지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포착됐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있기에 더욱 위험했다. 얼른 반대편으로 넘어가 한 명씩 붙잡아 횡단보도로 내려줬다. 차량을 통제하랴, 넘어지는 아이들을 부축하랴, 어머니들의 옷은 흠뻑 젖었다.
교통지킴이를 하는 어머니들은 비가 내릴 때 깃발이 젖어 무척 힘들다고 했다. 어린이보호구역의 규정을 무시하고 시속 70~80㎞로 달리는 차들에 아이들이 다칠까 걱정된다고 했다. 차디찬 바람과 길바닥에 떨어진 낙엽이 세차게 날아와 뺨을 사정없이 때리지만, 아이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 학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다고 했다.
교통지도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 보면, 흐뭇한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할아버지께서 교통지도하는 모습을 손녀가 자랑스러워한다고, 며느리 대신 봉사하던 김서인의 할아버지,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한 사람을 대신해 친정 여동생과 함께 봉사하던 이지우의 어머니, 13년째 교통지도를 한다는 정회민의 어머니, 학부모의 손에 따뜻한 음료를 쥐여준 선생님들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겨울방학 하는 날, 학교 도서관에서 교통지도 업무를 맡은 황정희 선생님을 만났다. 학부모회가 12월에 발간한 학부모 활동 사례집을 읽어봤는지 물었다. 교통지킴이 강정하 총무가 쓴 글 속에 교감 선생님이 찍어서 보내주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글을 보니, 학부모님들과 나누는 감사함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교감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사진도 찍어 주시고, 담임 선생님께서도 이틀 내내 들르시고, 수고하시라며 커피까지 주시고, 학교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에게 교감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사진을 보여주면서, 엄마가 봉사를 실천하는 모습도 보여 줄 수 있어 값진 교육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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