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기 대전발전연구원장 |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치열한 체제대결을 펼친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올라섰다. 경제성장의 뒤안길에는 정치민주주의의 희생과 역사적 정체성에서도 혼돈을 겪었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동력에는 한일협정을 통한 일본자본의 수혈, 월남전쟁의 특수, 중동건설의 붐 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주체성의 훼손, 국제적 이미지 측면에서 손실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 법이다. 내부적으로는 유신독재와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민분열도 가속화 됐다.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5060세대는 그 시대의 주체다. 균형감을 지닌 세대가 50대이고 그들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김영삼 정부에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는 대결단을 내렸으나 경제위기로 빛이 바래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제와 함께 남북관계의 회복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노무현 정부가 권위주의를 탈피하려는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급격한 개혁을 도모하려 했으나 전술적 실패를 범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거창한 기대와는 달리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남북관계마저 경색시켜 놓았다. 차기대통령에게 짐만 안겨 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새롭게 탄생하는 정부도 많은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 쉽다. 사회의 당면과제가 경제적 양극화해소, 경제회생과 일자리창출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그렇다고 세계경제가 어려운데 경제민주화를 추진한다고 크게 나아질 리 없을 것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보하고 공정한 거래를 확립하는 일이 벅차긴 하나 그 정도는 해내야 한다.
새 정부가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려고 정치개혁으로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지금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은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됐다. 보수와 진보의 공통 목표는 어떤 사회시스템이 국민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진보는 좌파를 넘어 빨갱이로 매도되고 있다. 이분법적 구도가 당장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결국 대한민국의 존립이 위태롭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까지 건전한 진보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건전한 진보는 민주주의체제를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도록 권력의 폭력화를 거부, 권한의 집중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다.
건전한 보수는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고 사회의 안정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불건전한 보수는 분단과 외세에 무개념인 채 오로지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이 없어왔다.
새로운 정부는 왜곡된 정치구조를 바로 잡고 경제정의를 실천하며 사회질서를 세워서 분열과 대립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분권형 개헌으로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의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권력집중은 공권력의 남용과 부패를 낳게 마련이다.
세종시 건설로 공간적 역할이 이뤄진 만큼 총리에게 내치를 맡기고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에 전념하는 개헌이 가능하다. 분권형 헌법질서는 통일을 대비해서도 필요한 학습이다.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해소하고 통합과 협력으로 나아가는 새 정부의 역사적 임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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