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미술 외에는 하고 싶은게 없었다는 그는 3학년 때 홍익대와 목원대, 한남대 등에서 주최하는 미술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실기 특대장학생이 된 그는 결국 한남대를 선택했다.
이후 김 대표는 우송대 대학원의 교수진이 미국 최고의 디자인학교인 아트센터 출신들로 포진되면서 소중한 교수들을 만나게 됐다. 그는 “대학원에서 만난 교수님들은 국내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던 나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수없이 많이 보게된 외국의 타이포그라피와 캘리그라피를 보면서 김 대표는 이 분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운영하던 디자인 회사마저 잠시 중단하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교수님들이 하는 학부수업의 전공과목들을 다 듣게 해달라고 해서 들었다”며 “대학원에서 여러 가지 전공분야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문자학을 공부하는 타이포그라피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1999년 처음으로 한국에 캘리그라피가 태동하기 시작했지만, 1997년 대학원에서 이미 김 대표는 서양의 다양한 캘리그라피를 접하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올해 출판한 염홍철 대전시장의 저서 '다시 사랑이다'의 제호도 김 대표의 작품이다. |
본격적으로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초대전 요청도 쇄도해 그는 올해에만 개인전을 4번이나 치를 만큼 바쁜 한해를 보냈다. 올해의 경우 행사가 많아 단체전이나 순회전은 작품만 보내고, 참석을 하지 못한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거절할 수 없는 초대전이 계속 기다리고 있어 틈이 나는 시간엔 늘 작품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며 “한번, 두번 전시회를 해 나가면서 다시금 글꼴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게 되고, 새로운 글꼴과 도구도 개발하게 돼 늘 쉬지 않고 연구하는 작가로서의 활동의 하나로 전시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글=박전규ㆍ사진=이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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