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屈)은 몸 시(尸)에 나갈 출(出)을 받쳐 놓은 글자이다. 허리를 굽히고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지조를 꺾는다는 데서 '굽히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전한시대 성제 때의 일이다. 장안에 큰 홍수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갑자기 퍼졌다. 홍수를 피해 장안을 떠나는 행렬이 줄을 이었고 여기저기 대혼란이 일어났다. 다급해진 성제는 중신들과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성제의 장인인 왕봉은 실상을 조사 하지도 않고 시급히 피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왕상은 헛소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撓屈). 이후 그 의견이 정확하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되어 왕상은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이 일로 왕붕과 왕상의 사이는 아주 나빠졌다. 얼마 후 왕붕의 친척 양융이 실정을 하여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왕붕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왕상은 처벌을 주장하였고 결국 양융은 파면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불요불굴은 “난관을 굽히지 않고 꿋꿋이 견디어낸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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