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투표도 따져보면 별 거 아닙니다.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체감 확률은 거의 제로입니다. 찍는다고 바뀌는 게 있습니까? 이번 대선 유권자는 대략 4000만 명. 투표율 70%를 가정하면 유효투표 수는 2800만 표지요. 그 중 한 표일 뿐입니다. 경제학적 의미로 따지면 지극히 비합리적 행위지요.
정말정말 그렇게 생각되십니까?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은 다시 소란스럽습니다. 지난해 독재자 무바라크를 내쫓는 재스민 혁명을 했지만 새로 뽑은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아랍의 봄'이 왔다고 들떴지만 다시 '아랍의 겨울'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별 거 아닌 민주주의, 그걸 한다는 거 이렇게 힘이 듭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중년 이상의 세대들은 알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어떤 나라는 민주주의가 잘 되고, 어떤 나라는 안 되는 걸까요?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묻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못 사는가. 책을 쓴 대런과 제임스는 그게 다 '제도' 때문이라고 들려줍니다. 좋은 제도를 가진 나라가 잘 되고 잘 산다는 것입니다.
제도는 누가 만듭니까? 정부와 정치권입니다. 그걸 정하는 건 누굽니까? 국민입니다. 정하는 제도가 '선거'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완성된 제도가 아닌 성장 진화하는 '살아있는 민주주의'로 이해한다면 선거는 그것의 뼈와 근육을 새롭게 하는 수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선은 정치에 갱생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2800만 표 중 1표. 보이지도 않고 티도 안 납니다. 그런데 두 후보가 우연히 똑같은 표를 얻었고, 개봉하지 않은 한 표가 남았다고 칩시다. 이 한 표가 가난한 자의 것이든, 가진 자의 것이든, 노인의 것이든, 젊은이의 것이든 전혀 상관없이 정권을 결정합니다. 민주주의에서 한 사람은 2800만분의 1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바로 나라이고, 한 명이 '모두'입니다.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압니다. 이번 대선은 참으로 이상한 선거입니다. 정책 공약 대결은 일찌감치 무산됐고 살벌한 상대 후보 헐뜯기로 시종했습니다. 앞으로 5년, 짧지 않은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결정하는 일인데, 그런 대선에 화두가 보이지 않고 치열한 이슈 파이팅이 사라졌으니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나라는 부강해야 하고, 국민은 자유와 번영 아래 행복하며 세계 속에서 당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바람을 이뤄줄 후보 누구입니까. 우리 앞에는 지뢰밭처럼 숱한 악재가 널려있음을 압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 열정을 담아 난세를 헤쳐 나갈 시대정신을 말하는 후보, 안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를 지속 발전시키고, 밖으로는 글로벌 '경쟁과 협력'을 잘 이끌 후보, 누구입니까.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성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유능하게 키워낼 후보는 누구입니까. 지역, 계층, 세대, 이념 간 단절을 이어줄 후보, 하층부에서 상층부로 오르는 '희망 사다리'를 복원할 후보는 누구입니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대혁신을 단행하여 지난 수십 년간 쌓인 적폐를 걷어낼 후보는 누구입니까.
병원비가 걱정이십니까? 그렇다면 무거운 부담을 덜어줄 후보는, 구멍가게 장사가 문제라면 경기를 살리고 자영업자를 살릴 후보는 누구입니까. 그리하여 배곯지 않고 등 따습게 해줄 후보는 누구입니까. 후보뿐 아니라 각 진영의 장수들도 대가족 사진 들여다보듯 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들의 삶과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삶을 결정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만약 내가 찍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가 소신을 펴게끔 계속 성원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그 반대라면 부단히 비판하고 견제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인 노릇'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투표는 마침표가 아닌 시작입니다. 비록 미미해 보일지라도 모든 것은 우리 손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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