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 자맥질이 즐겁다. 어미 뒤를 따르는 제법 큰 새끼오리 다섯 마리. 아하! 지난여름 그놈들인가? 맞다. 그러고 보니 같은자리. 추위도 아랑곳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등천, 작은 생명들이 숨쉬는 삶의 터전.
넘어질까 조심조심. 고개 들어보니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 맵시 좋은 커플 점퍼 돋보인다. 십중팔구 부모님 따뜻한 겨울나라는 자식들의 마음. 아이들 잘 키운 노년에 맛보는 여유. 보기좋다.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살자” 함께 걷는 이의 귓가에 속삭인다. 천변을 가로지르는 돌계단 재미삼아 왔다갔다, 어느덧 뿌리공원. 살얼음 내려앉은 호수 위로 새들이 내려앉는다. 평화롭다.
긴 철제 다리를 건넜다. “어? 휴게소가 없네” 겨울이면 어묵팔고 여름이면 아이스크림 팔던 구멍가게. 추워서일까? 지난겨울에는 있었는데…. 불황 탓인가? 대전에서 내로라하는 관광명소 분명한데 따끈한 국물 한 모금 마실 곳 없다. 못내 씁쓸하다. 어묵 국물 대신할 자판기 눈에 띈다. 손에 든 캔 커피가 제법 따듯. 30분쯤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 교육 얘기, 내년 살림살이 계획.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가던 길 숨어있던 왜가리가 눈에 띈다. 먹잇감 찾는 우아한 날갯짓. 피라미 한 마리 낚아채 소나무 숲을 향한다. 도심에서는 상상 못 할 한 폭 수채화, 호사스런 풍경. 감사하다.
해가 짧다. 오후 5시30분 벌써 어둑어둑. 집으로 향하는 길. 자동차 쌩쌩대는 도로 갓길 손수레가 힘겹다. 종이박스 몇 개에 신문 몇 덩이, 너저분한 잡동사니들. 남루한 옷차림에 삶의 무게가 배어난다. 내갈길 바쁘다며 속도내는 자동차들. 그 사이를 비집고 손수레를 잡아끈다. 아슬아슬 인생 곡예. “저 할아버지도 자식들 있겠지?” 뻔한 질문 던져본다. 헛헛한 한숨 새어나온다. 부자는 더 부자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세상. 개천에 용 안 나온다는 말이 진리인 세상. 아! 가슴 한켠 아리다.
우리 아이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보내고 성공시켜야 할텐데. 걱정이 점점 커진다 눈덩이처럼. 1년 내내 들썩이던 정치판, 드디어 결정의 날이 왔다. 새로운 5년에 투자하는 날. 희망을 품어본다. 조금 더 살기좋은 시절 오기를. 12월 19일 아침 일찍 부지런 떨어볼 참이다.
황미란ㆍ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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