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규대사의 의승장비와 전나무 길. |
각 고을마다 그 고을의 상징 또는 지킴이라 할 수 있는 진산(鎭山)이 있다. 이 진산은 그 고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 고을 사람들과 여러 가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래서 그 고을 학교들의 교가 가사에 그 고을 진산의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진악산도 금산의 여러 학교 교가의 가사에 들어있다.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은 금산 고을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우람한 산으로 금산 고을 사람들의 삶에 직ㆍ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금산의 상징이 되어 있는 인삼이 처음 사람의 손으로 재배된 개삼터가 진악산 자락에 있으며 금산 고을의 복판을 흐르는 금화천이 이 진악산으로부터 비롯되며 봉황천은 진악산을 감아 돈다. 그래서 금산 사람들은 사시사철 아침저녁으로 진악산의 위연한 모습을 우러러보며 삶을 엮어 나간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진악산의 모습에서 밝은 내일을 내다보고 용기를 얻는다.
우람하고 아름다운 진악산
나는 명산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산상(山相-산의 모습)도 꼽고 있다. 진악산의 모습은 특히 금산고을의 동부 일대에서 보면 우람하고 장중하여 군자의 기상이 뚜렷하다. 진악산이 좋은 점은 하나 둘이 아니다. 그 모습이 우람할 뿐 만 아니라 남북으로 뻗은 바위 등성이가 무척 아기자기해서 산행의 재미가 좋은데다 이 바위 등성이는 동서로 천길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어 등성이에 서면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동쪽으로 깎아지른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금산읍과 금산의 동부 일대 들녘을 내려다보게 되어 조망의 재미가 매우 좋다. 주봉에서 남쪽의 상봉까지 바위로 된 높은 벼랑 위를 지날 때는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상쾌한 기분과 그 멋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사실 이 높은 바위벼랑길은 주봉의 북쪽 멀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산상과 바위 등성이 그리고 조망이 좋은 것에다 진악산이 또 좋은 것은 숲과 골짜기 개울도 매우 좋다는 점이다.
진악산 자락의 명소와 명물들
또 진악산 산자락 일대에는 명소와 명물, 절 등 볼거리도 여러 곳에 있다. 옛날 불교 31 본산의 하나였던 보석사,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원효암과 원효폭포, 영천(영험한 샘물)으로 유명한 영천암이 있다. 보석사는 그 들머리의 전나무 숲이 좋다. 전나무 숲 끝에 13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영험하다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높이가 40m 가슴 높이 나무 둘레가 10.4m나 되는 거대한 나무로 신라 헌강왕 때 조구대사가 보석사를 창건하며 여섯 제자와 함께 심었다는 전설이 있고 한일합방, 6ㆍ25 한국전쟁 때 등 나라가 위태할 때에는 이 은행나무가 운다는 이야기가 있다.
봉화를 올린 봉화대 터, 임진왜란 때의 의승병장인 기허당 영규대사가 왜란 전에 보석사에 머물렀던 인연으로 보석사에 영정을 모신 기허당 영규대사가 머물렀던 의선각과 의승장비가 있다. 진악산 동쪽 산자락에 인삼을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개삼터가 있는가 하면 큰등성이(주릉)에 있는 명물 도구통바위는 우뚝하고 높아 산 아래에서도 올려다 보인다. 또 주봉 아래 바위벼랑 중간에는 관음굴(빈대굴)이 있어서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이 물굴은 영천암 뒷산의 비실 쪽(동쪽) 산 중턱에 있는 굴로 굴속의 물이 밖으로 흐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이 굴의 물이 반대 쪽 영천암의 약수와 서로 통해져 있다고 믿고 있다. 또 이 굴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의 은신처로도 알려져 있다.
수리너머고개에서 시작해 보석사에서 끝낸 진악산 산행
가을 어느 날 수리너머고개 휴게소에서 차를 내린 우리는 길 건너의 나무 계단을 오르면서 진악산 산행을 시작했다. 잘 만들어진 높은 계단 끝에서 길은 숲 속으로 들어간다. 간간히 보이는 색색의 단풍이 고왔다. 이 숲 속 길을 한참 오르고 나면 주릉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주봉락까지의 등성이가 소나무와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암릉이며 금산읍을 비롯한 금산군 동반부가 내려다 보이고 서대산 천태산등도 조망할 수 있어 진악산 제일의 산행코스다. 주봉은 제법 넓은 덕으로 덕유산 운장산 대둔산이 조망되며 금산고을 대부분을 살펴볼 수 있어 좋다. 상봉보다 좀 낮지만 여기가 주봉 노롯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해마다 여기서 새해맞이 행사도 하는 곳이며 쉬기에도 좋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주봉에서 상봉으로 가는 주릉은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느낌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동쪽이 천길 벼랑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봉은 봉화대터였다 한다. 지금은 나무가 들어서 있어 조망이 좋지 않다. 상봉에서 주릉을 타고 가다 보석사 골짜기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이 지역 사람들이 도구통바위라고 부르는 유명한 선바위가 있다. 도구통은 절구통의 사투리로 바위가 절구처럼 높이 서있어 산 아래 비실에서도 잘 보인다. 보석사 골짜기는 너덜지대여서 조심해야 했다. 산길은 영천암에서 끝난다. 영천암은 물굴과 통해 있다는 유명한 약수가 있다. 여기서부터 산행이 끝나는 보석사까지는 찻길이다. 골짜기가 바위와 어우러진 개울이 있어 경관이 좋고 시원하다. 골짜기 끝에 노랗게 물든 크나큰 은행나무가 우리를 맞이했다. 천년 세월을 살아온 은행나무가 장하게 보였다. 은행나무 바로 옆에 있는 보석사에 들려 대웅전의 부처님도 뵙고 기허당에서 영규대사의 영정도 배견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전나무들이 줄을 짓고 있는 길 끝에 영규대사의 의승장비가 있다. 거기서 바로 일주문을 지나면 나오는 주차장에서 3시간 반의 진악산 산행이 끝났다.
▲ 보석사의 천년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365호). |
진악산의 남쪽 산자락 산행의 들머리 또는 끝머리가 되는 곳에 옛 절 보석사가 있다. 신라 헌강왕 12년(886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한 절로 한 때는 우리나라 31 본산의 하나로 호남의 여러 절을 관할하는 본사이기도 했다. 창건 당시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다 해서 '보석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본래의 절은 없어지고 지금의 대웅전은 조선 말기의 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정면 3간 측면 3간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기허당 영규대사와 관련되는 세 가지가 여기 보석사에 있다. 영규대사가 머물었던 '의선각'이 대웅전 오른편 아래에 있고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신 기허당이 대웅전 바로 오른 편에 있으며 기허당의 장한 뜻을 기리는 '의승장비'가 절 들머리에 있다. 개울 건너 절 아래에는 천연기념물 365호인 천년 은행나무가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전형적인 삼존불이다.
●산길
진악산은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다. 그래서 주봉의 동쪽 족실(금산읍 계진리)이나 원효암 또는 수리너머재에서 주봉으로 오르거나 석동(남이면 석동리)에서 보석사 영천암 도구통바위를 지나 상봉에 오른 뒤 주봉으로 나아간다. 주봉에서는 족실 또는 원효암 혹은 수리너머재로 하산하면 진악산을 온전하게 타게 된다. 그러나 남북을 종주하는 산행은 차의 운전자가 산행을 하지 않고 반대쪽으로 차를 몰고 가서 기다리는 경우에는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산의 경관이 뛰어나게 아름답고 조망이 좋은 북쪽 주봉을 중심으로 산행을 한 뒤 차를 타고 보석사로 돌아 보석사와 의승장비 은행나무 등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1)수리너머재 길:수리너머재~재(장승)~주릉~주봉(약 1시간 20분)(2) 원효사 길:원효사 들머리-원효사(또는 원효폭포)~주봉(약 1시간 20분)(3) 보석사 길:보석사~영천암~도구통바위~상봉~주봉(약 2시간)
진악산은 금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금산읍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금산을 거점으로 해야 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되면 전국 어디서나 대전~통영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금산 요금소에서 빠져나와 우선 금산 읍내로 들어선 뒤 계획에 따라 산행 들머리를 찾아가야 한다. 금산에서 산행 들머리가 되는 수리너머재 족실 보석사(석동) 등으로 찾아가는 길은 다음과 같다.
1. 수리너머재 또는 원효사 :금산읍에서 서쪽으로 금산산업고등학교 앞을 지나 수리너머재를 넘어 진악산 뒤(서쪽)의 하금리(남이면 면청 소재지)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이 수리너머재를 넘기 직전에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있는 작은 휴게소가 있다. 여기가 진악산 산행의 수리너머재 기점이 되는 곳이다. 또 수리너머재를 넘어 조금 내려가면 왼편(진악산 쪽)으로 원효사 안내판이 보이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 들머리에 주차장이 있으며 조금 더 들어가도 작은 주차장이 있다. 이 주차장이 원효사길의 들머리가 된다.
2. 족실 방면 : 수리너머재길과 같이 시작한다. 이 길이 금산산업고등학교 앞으로 꺾어지기 전에 다리를 건너 냇물을 따라 올라가다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면 족실 마을에 이른다. 족실 마을에서 서쪽으로 고샅을 지나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선공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지나 관음굴 아래를 거쳐 진악산의 주봉으로 오를 수 있다. 차는 족실 마을에 두어야 한다.
3. 보석사 방면 :금산읍에서 남쪽으로 진안을 향하는 13번 국도를 따라가면 개삼터가 있는 비실(남이면 성곡리) 마을 앞을 지나게 된다. 이 길을 5분 쯤 더 가면 다리가 나서고 다리를 건너기 전에 635번 지방도가 오른 편으로 갈라져 나간다. 이 635번 지방도를 따라 5분 쯤 가면 보석사 안내판이 있고 이어 널찍한 보석사 주차장이 나선다.
*김홍주 소산(素山)산행문화연구소장의 '충남, 내고향의 산'연재가 이번 회로 끝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김홍주 소장은
1932년 금산 출생. 42년간 교단에 서오다 1997년 퇴직한 뒤 산행문화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산행을 주제로 한 저술활동으로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 '한국 51 명산록', '조망의 즐거움', '산행문화와 웰빙 라이프'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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