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요즘 어떻게 지내냐. 그럭저럭. 바다 아직 나가냐. 그걸로 먹고 사니까 그냥 하고 있지. 뭐. 대책이 없다. 내가 일본 근무 가게 됐을 때 원제와 나눈 얘기다.
어망공장 앞 방파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놀던 자리. 혼나가며 뜯어온 파. 그걸로 파피리. 총적(蔥笛)이라 했던 피리 만들어 분 곳. 사십 중반 사내 둘이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연 야, 사는 게 정말 힘들다. 원제가 한숨 길게 내 쉬었다. 연평도나 백령도로 고기잡이 나간 장항 배. 그 선단에 생필품 보급하러 가는 일. 그 무렵 친구 원제가 하는 일이었다.
쾌속선에 라면이랑 소주랑 싣고 거기까지 간다. 대금은 잡은 생선으로 받아온다. 해적질. 선창에는 서울서 온 트럭이 기다렸다. 시세의 반값에 후려쳤다. 돈 많은 도둑놈들. 붙잡혔다.
그때마다 수갑 차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사정사정해서 빼내곤 했다. 이제 널 누가 빼내겠냐. 걱정은. 다 사는 길 있지 않겠냐. 근데 이번에 가면 언제 오냐. 삼년이다. 길다.
갔다 오면 더 출세하는 거잖아. 잘 됐다. 너. 그래. 난 말이야. 영 생활이 피질 않는다. 좀 벌었다 싶으면 나갈 구멍 생기고. 돈에 눈이 있다더니 정말 그런 거 같다.
원제는 어려서부터 극장 문지기로 일했다. 깡패는 아니었다. 막일 전전했다. 동생이 권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돈 좀 만지나 했더니 중도이폐(中道而廢).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관청이라든가 정부라든가 하는 기관은 착취주체였다. 경제가 많이 발전해서 국민이 잘 살게 됐다는 말만은 수없이 들었다. 한데 도대체 어떤 놈들 배 불렸냐 했다.
옛날처럼 굶지는 않는다. 그렇긴 해도 굶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막노동도 하고. 고단하다. 그 많은 돈 다 어디가 있는지. 야, 정말 힘들다. 사는 게.
그 말 듣고 도쿄 가고. 돌아와서 여기저기 다니고. 어영부영 십년 흘렀다. 그때 들려온 소식. 불알친구가 자살했다는. 아들이 부동산 투자에 실패. 거리로 내몰리자 목숨 끊었다고.
살려고 애 많이 썼다. 착했다. 결과가 그거라니. 세상 불공평하다. 없는 사람만 죽게 만드나. 배제다. 인류역사의 지성은 무엇인가. 공정과 평등이라는 정의 추구인가. 과연?
순호도 죽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인쇄소 했다. 사장 명함 들고 봉고차 몰며 주문 받고 배달하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내 사무실 들렀다. 얼굴 보고 고향소식 전하고.
애들 교육 걱정된다. 그 말 입에 달고 살았다. 영어 하나라도 제대로 시킨다며 끝내 필리핀으로 갔다. 몇 년 후 부인이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 전해주고 갔다.
경제성장은 부자가 아닌 자의 상태를 개선시키지 못하는가. 가난한 계층의 고통을 오히려 심화시키는가. 부자는 더 부자 된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진다. 차이가 더 벌어진다. 옳은가.
어망공장 그 방파제. 좀 묻어두려 해도 자꾸자꾸 생각난다. 소년시절이 고스란히 잠겨 있어서다. 불혹지년(不惑之年)에 바라보던 붉디붉은 금강하구 석양. 힘들다던 원제의 아우성 같다.
아버지가 어업협동조합에 다니는 향금이가 집 나갔다는 소문도 거기서 들었다. 순호가 제안했었지. 아마. 가출했어도 향금이는 동기동창이다. 멤버로 대우하자. 서울 가게 되면 꼭 찾자.
철새 우는 강변. 깨끗하게 컸던 아름다운 내 고향. 타향살이에 그립고 그리웠다. 객지에선 분주했다. 내 청춘 어떻게 보냈는가. 재미? 그런 거 볼 짬 어디 있었냐. 꿈만 많았다.
세상 사람들아. 어찌 세상이 갈수록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더 넓어지는가.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외치던 그때와 지금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불공정과 불평등은 여전하다.
고생하다 간 원제가 말 걸어온다. 그 방파제에서 만나자. 순호가 맘 편히 올 거고. 영모와 동길이는 니가 연락해라. 해주에서 월남한 준모 형도 오라 하자. 뭐 하려고 그러냐?
자본주의가 부자용 장치라는 빌미를 공산주의자에게 주지 않을 지도자.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를 단절시킬 리더. 삶의 서글픈 실상도 볼 줄 아는 대통령 선별하기다. 가자. 투표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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