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부장 |
늪 같은 아침안개, 쓸쓸한 정오의 햇살, 화려한 설국의 하얀 눈꽃…. 세월이 가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다. 아름다우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겨울은 나 자신을 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그 결핍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느끼게 해준다.
젊은 날, 난 세상의 중심에서 한참 먼 변방의 낭떠러지에 매달려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어느해 1월이었나. 차이콥스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TV에서 보았다. 잎을 떨군 순백의 자작나무가 우거진 눈덮인 시베리아 숲속을 차이콥스키가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우아하면서 천둥같은 우렁찬 피아노 화음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이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한다. 동토의 땅, 도스토옙스키의 유형의 땅이 아니었던가. 그 후로 웅장한 선율이 흐르는 하얀 눈밭의 자작나무숲은 내 젊은 날 겨울의 판타지가 되었다. 비루한 현실과 환상이 버무려진 청춘의 길은 멀고도 더뎠다.
그러나 어머니와 동행한 이청준의 새벽 '눈길' 만큼 곡진한 길이 있을까. 누구도 밟지 않은 그 '눈길'은 어머니와 아들의 만남과 이별의 형태를 보여준다. 아들에겐 부끄러운 눈길이었으며 어머니에겐 모성의 눈길이었다. 눈은 삶의 고단함을 뒤덮을 수 있는 포용의 상징이다. 한없이 내려서 밤새 쌓인 대지 위의 눈은 아들과 어머니의 부끄러움과 상처를 감싸안는 아름다움의 형상이다.
눈은 순백의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정교한 결정체는 그 어떤 철학적 설명도 용인하지 않는다. 또한 그 무엇이든 극도의 아름다움은 분열적인 사고의 세계를 조장한다.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샤이닝'을 통해 거대한 악령의 소굴에서 한 남자가 미쳐가는 과정을 눈덮인 외딴 호텔을 배경으로 보여준다. 앞뒤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사방이 눈으로 가득한 새하얀 밤에 도끼를 휘두르며 쫓아오는 미치광이를 상상해보자. 작가인 잭 토랜스는 눈으로 쌓인 폐쇄된 호텔에 갇혀 유령을 만나면서 광기에 휩싸인다. 급기야 그는 도끼를 들고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 한다. 푸른 기운이 감도는 눈으로 뒤덮인 호텔 정원의 미로에서 잭과 아들 대니의 쫓고 쫓기는 추격신은 섬뜩하고 숨막히는 긴박감을 준다. 그리고 아름답다. 따뜻한 사랑과 포용의 이미지 뒤에 도사리고 있는 눈이 주는 공포감은 그래서 더 극대화된다.
'사르락, 사르락.' 겨울밤 대숲에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광균은 한밤중 눈오는 소리를 '먼-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라고 관능적으로 표현했다. 유년 시절, 마당에 소나무에 혹은 담장에 내리는 눈을 보며 떡가루라고 상상하곤 했다. 차가운 눈을 언 손으로 꼭꼭 뭉쳐 시루떡 모양을 만들거나 눈덩이를 굴려서 롤빵처럼 만들기도 했다. '이게 떡이면 얼마나 좋을까, 빵이면 얼마나 좋을까.'
가난했던 시인 기형도는 그의 시에서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고 고백했다. 배 고픈 시절이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가난이 뭔지 몰랐다.
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유세가 한창이다. 두 후보는 저마다 복지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와 빈곤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자다가 불이 나 할머니와 손자가 숨졌다. 홀로 부양하던 장애인 남동생을 불길 속에서 구하려다 숨진 소녀와 생활고로 자살한 할아버지도 있다. 돈이 없어 70 나이에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할머니들도 있단다. 얼마 전 칼바람이 부는 새벽녘 남도 어느 기차역에서 보았던, 발작으로 쓰러진 남루한 옷차림의 중년의 사내는 어떻게 됐을까. 돌아갈 곳 없는 길 위의 인생이라는데.
올 겨울은 어느해보다 혹한과 많은 눈이 예상된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다. 결코 떡가루일 수 없는, 쌀일 수 없는 싸락눈이 쏟아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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