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해방과 그 이후의 격동기 그리고 6·25전쟁을 거쳐 철저하게 파괴되어버린 나라, 그 곳에서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 자랐으며 전심으로 달려와 지금의 이 시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결과란 바로 그 이전의 과정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이 시대가 보여주는 찬란한 모습들은 바로 이전의 고통과 희생이라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7080 그 세대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길고 긴 나락과 어둠의 길뿐이라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참으로 숨차게 살아온 세대, 오로지 희망만을 마음에 품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 밤 세우는 줄 몰랐고 열심히만 하면 부자가 되고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줄 알았던 세대, 실패란 성공을 위한 발판일 뿐이라고 여겼던 세대 - 그 세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바로 7080세대이며 지배적인 정치세력,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세대가 바로 7080세대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 어떤 불만도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앞 만 보고 달려왔고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뛰어, 뛰어 높은 산 정상에 올라왔지만 그 정상은 바로 내려갈 곳 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세대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른 아침 동사무소의 스피커에서 울려오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새마을노래를 들으며 눈을 뜨던 세대, 동네마다 주민들에게 할당을 주어 빗자루를 들고 골목, 골목 청소를 해야 했던 세대, 학교에 가면 구호물자로 만든 옥수수 빵과 끓인 우유를 나누어 주었으며 잡곡이 섞여있나 도시락을 검사받던 세대였고, 한 반에 3, 4명 정도는 고아원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던 세대였던 것이다. 봄이 되면 제대로 먹지 못해 부황이 들었다는 말도 듣고 자란 세대였고 가뭄과 홍수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세대, 요즈음 젊은이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전염병인 콜레라, 장티푸스에 걸릴까 두려움 떨고 살았던 세대였고, 판자촌 수백가구가 볼일 볼 곳이 너댓개 연속되어 있는 공중변소를 사용하면서 자란 세대였던 것이다. 벌거숭이 된 산에 의무적으로 매년 나무를 심으러 가야했고 공부할 시간에 소나무의 송충이를 잡으러 가야 했던 세대였던 것이다. 5개년 경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장기집권과 권력집중으로 잃었던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맨 손으로 맞서 싸웠던 용감한 세대였고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결국 민주주의를 쟁취한 세대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와 더불어 자원도 없는 빈국, 대한민국을 기술로, 상인정신으로 경제적인 부를 이루었고 정치와 경제면에 있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급성장의 주역이기도 한 세대였던 것이다.
어느 사이 판자촌은 재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수십 층, 수천세대의 아파트단지로 변했고 구멍가게는 24시 편의점으로, 재래시장은 백화점, 대형마트로 대체되었으며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았던 기업들이 수십 개의 기업을 거느린 대기업, 재벌로 성장하였고 은행들도 통폐합되어 거대한 금융그룹으로 바뀌면서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선진국으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7080 그들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 것일까? 그들의 불행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의 도약하기 직전인 1997년 IMF로부터 시작된다. 소규모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살인적인 이자에 문을 닫아야 했고 수많은 직장인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하에 직장에서 쫓겨나야 했던 것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사업은 망하고 직장을 잃은 7080세대들. 그들은 다시 일어나기 위하여 처절하게 몸부림 쳤지만 슈퍼마켓은 대형마트에, 음식점은 프랜차이즈에, 직장은 젊은이들에게 밀려 결국 사회에서 멀어진, 잊혀 진 계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도시의 역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집 없는 그들, 잠잘 곳을 찾아 길거리를 배회하는 그들이 누구인줄 아는가? 교육만이 유일한 성공의 길이라고 여겼던 그들이 자식들에게 온 몸을 바친 후 남아있는 것은 가난, 늙음과 병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 시대의 절망은 바로 전쟁에서 돌아온 노병들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버린 그들 역시 결국 노병이 되어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인간다움의 근본은 효(孝)와 제(悌)에 있다는 공자님의 말씀이 이 시대가 잊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의 말씀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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