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면 주로 배추김치를 생각하지만, 배추김치를 담그기 전에 먼저 동치미나 총각김치 등 무김치를 담갔다. 동치미를 먼저 담그는 까닭은 김장철에 자칫 잘못하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수분이 많은 무가 얼어버리면 쓸모없게 되기 때문이다. 배추는 무에 비해 추위를 견디는 힘이 약간 있어서 조금 늦게 담가도 되었다. 그런데 이 무로 담근 동치미와 동치미국물은 맛이 일품이었다.
동치미를 담그는 일은 배추김치를 담그는 만큼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튼실한 무를 잘 씻어 기다란 잎이 그대로 달린 쪽파와 소금물에 삭힌 풋고추, 그밖에 통마늘 등을 함께 항아리에 넣고 적당히 간을 맞춘 소금물을 부어 서늘한 곳에 두고 발효시키면 맛있는 동치미와 국물이 된다. 특히, 발효가 잘된 동치미국물 맛은 요즈음 맛과 기능으로 승부한다는 그 어떤 음료도 따라올 수 없었다. 눈보라가 치는 겨울밤, 문풍지 소리를 들어가며 군고구마와 찐빵, 팥죽과 함께 먹는 동치미와 그 국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다른 것에 곁들여 먹지 않는다 하여도 쩍쩍 길게 쪼개서 먹는 동치미와 그 국물 자체만으로도 긴 겨울밤의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총각김치 또한 그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동치미나 총각김치뿐만 아니라 무로 여러 가지 겨울철 음식을 장만하였다. 지금이야 단무지, 장아찌 등 가공식품들이 많아서 즉석에서 사 먹으면 그만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무지 장아찌도 담가 먹었다. 단무지는 지금은 들녘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길이가 30여 ㎝나 되는 기다란 무가 있었다. 소위 왜무라고 했던 것인데, 통째로 햇볕에 삐들삐들 말려서 소금과 쌀겨와 함께 항아리에 켜켜이 쌓아서 발효시켜 만들었다. 치자를 넣어 노란색을 내기도 하였다. 이 단무지의 쫀득한 질감과 그 맛 또한 지금의 단무지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장아찌 또한 무를 잘 발효된 집 된장에 박아 놓거나 간장에 담가 발효시켜서 만들었다. 이렇듯 김장은 배추 김장뿐만 아니라 무 김장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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