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선생은 1905년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배재학당에서 수학하고 1910년 윤덕경과 결혼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과 사회개혁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현 선생은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경상도 의원으로 선출, 1923년 1월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되자 고려공산당 대표로서 임시정부 내 계파 간 이견조정에 힘썼다.
현 선생은 1924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이 함께한 상해청년동맹회가 결성되자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계파별로 나뉜 독립운동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자 노력했고 독립사상 고취를 위한 잡지 발간, 강연회 개최, 인쇄물의 국내 배포 등 계몽활동에도 주력했다.
상하이 인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 현 선생은 1928년 치안유지법 위반을 빌미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돼 4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옥고의 후유증으로 복막염을 얻어 40세에 별세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천안=김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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