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갑과 을, 막다른 길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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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갑과 을, 막다른 길에서 만나다

최충식 논설실장

  • 승인 2012-12-02 13:41
  • 신문게재 2012-12-03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별것 아닌 듯 어려운 상생.
 중소(中蘇) 국경분쟁 때 마오쩌둥이 인용한 지혜,
 ‘여섯자골목(六尺巷)’에서 답을 찾아본다.

골목이 멸종 위기에 있다. 먼저, 현실의 골목이 그렇다. '걷고 싶은 길 12선(選)'의 숲길, 호반길, 가로수길, 둘레길, 습지길…. 그러나 골목다운 골목은 없다. 커튼 드리워진 그녀의 창문이 등장할 법한 실존적인 길, 아니면 인사동이나 청진동, 황학동의 공간심리적 완충장치를 갖춘 길은 찾기 쉽지 않다.

600년 전통의 서울 피맛골도 도시재개발의 미명으로 막 갈아엎는 판 아닌가. 육조거리 높은 양반 행차마다 엎드려 조아려야 했던 민초들이 피마(避馬), 말을 피하던 골목이 피맛골이 됐고 또 상권이 형성됐다. 딱딱이를 치던 종로 순라길, 순종 어가길이 관광자원이라면서 피맛골을 짓뭉갠 속내가 뭔지, 갈데없이 집단 기억은 골목 밖으로 내몰렸다.

더러는 권세 넘치던 골목도 세월에 씻겨 애환으로 살아나기도 한다. 일품 조신들에게 35부(1500평), 서인에게 2부(85평) 등으로 나눠줬을 때 쥐락펴락하던 그들 세도가들은 길도 골목도 범하고 막으며 집을 세웠다. 막다른 골목(=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지경)을 만든 것이다. 조금 전 멀쩡하던 통행길에 봉이 김선달 식의 사용료 소송을 거는 사례가 또한 현대판 막다른 골목이다. 골목길 분쟁 현장을 지나치며 '여섯자골목', '육척항(六尺巷)'을 떠올려본다.

청나라 관리 장영(張英)은 담장을 침범한 이웃과 송사 중이라는 고향 편지를 읽고 시 한 수로 답장에 갈음한다. '천리길 편지는 다만 담장 하나 때문인데 남에게 석 자쯤 양보한들 무슨 방해가 있으리오. 만리장성은 지금 남아 있지만 그 연대의 진시황은 못 보지 않소.' (千里修書只爲墻 讓他三尺有何妨 長城萬里今猶在 見當年秦始皇) 답장을 받은 장영의 집에서는 담을 석 자나 들여쌓았고, 이웃 엽씨도 화답으로 석 자를 들여쌓았다. 이렇게 끝이 아름다운 '여섯자골목'은 지금도 보존돼 안후이성 서후가(西後街ㆍ시허우제)에 가면 볼 수 있다.

무차별적인 싸움 공간, 골목상권을 둘러싼 마트 대 골목의 갈등도 골목길 경계 다툼 성격이 있다. 이런 분쟁은 미국 LA에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가족과 지역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에 유통 공룡(월마트)이 들어와 피해를 본다.” 그 유사성이 놀랍다. 지역 상인들의 시위, '대형 체인소매점 규제 조례'를 LA시의회가 내놓은 품새도 그렇다.

동서를 막론하고 상생발전이란 대동세상 '같이 살자'는 명제지만 늘 디테일에서 꼬인다. 골목상권은 대형마트 하나 열면 500개에서 3000개의 소형가게가 망하거나 위축된다며 반발한다. 대형마트들은 영업규제 현실화 땐 마트 고용시장 5~10% 축소를 예고한다. 올 들어 현재 830여명이 마트에서 일터를 잃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민, 소상공인들은 유통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역시 어려운 문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통업계와 골목상권이 다 사는 방법은 한 골목에서 갑(甲) 호랑이와 을(乙) 토끼가 같이 살기와 구조상 흡사하다. 거기에 울타리를 치나, 말아야 하나. 진일보한 접점을 찾으면 모두 넓게 쓰는 '여섯자골목'이 나올 만한데 말처럼 정교하고 매끈하게 안 된다. 큰 선거를 앞둔 정치권까지 결과적으로 격렬한 골목싸움을 부추긴다. 생존의 골목길에는 겨울바람이 휭하니 지나간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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