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6년]그날 모두는 '그 사람'의 피해자였다

  • 문화
  • 영화/비디오

[영화-26년]그날 모두는 '그 사람'의 피해자였다

'5ㆍ18' 생존자들의 뼈아픈 복수극, 학살의 원흉 그 단죄의 끝은… 감독:조근현 출연:진구, 한혜진, 임슬옹, 이경영

  • 승인 2012-11-29 14:15
  • 신문게재 2012-11-30 11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 '5월 광주'의 피해자 유족이 학살의 원흉인 '그 사람'을 암살하려 한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미진, 조직폭력배 진배, 현직 경찰 정혁은 의기투합하고 26년이 지난 '그날', '그 사람'을 단죄하려 '그 사람'의 집을 급습한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이어선지 사회정치적 성향의 영화가 줄 잇는다. '남영동 1985'는 고문을 통해 '시대의 폭력'을 고발한다. 구타, 물고문, 고춧가루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세밀화 그리듯 묘사한 장면들은 고통스럽다.

원작이라 할 자서전 남영동에서 고 김근태 의원은 이렇게 썼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다.” 그렇게 그는 결국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문 장면들에서 사람과 짐승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이 느껴진다.

'돈 크라이 마미'는 2004년 경남 밀양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는 성폭행 당한 딸을 대신한 엄마의 복수극을 그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들 영화는 가슴이 먹먹해지다가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기억하라, 분노하라, 그리고 잊지 말라는 것이다.

어제 개봉한 '26년'도 '분노의 영화'다. 1980년 '그날', 광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 군대가 본분을 저버리고 자신들이 지켜야 할 국민을 외려 무참히 학살했다. 민주주의, 군부독재 반대를 외쳤다는 이유로, 그저 그 주변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시민들은 희생됐다. 3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시민들,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가슴에 깊은 상처를 지닌 채 살고 있다.

반면 계엄군에게 무자비한 진압을 지시하고 발포를 명령한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됐고, 감옥에 들어갔나 싶더니 금세 나와서는 재산 추징 요구에 “통장 잔액이 29만원”이라고 답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5월 광주'와 연관된 조직폭력배, 국가대표 사격선수,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이 26년 후 '그날', 학살의 원흉인 '그 사람'의 단죄를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5월 광주'의 비극을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한 시작부터 눈길을 확 잡아끈다. 지난해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던 '오돌또기'가 그린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보다 울림이 크다. 창문을 통해 날아온 계엄군 총탄에 어머니를 잃은 미진(한혜진), 야산의 시체더미 속에서 아버지 시신을 발견한 진배(진구), 금남로에서 계엄군 총탄에 누나를 잃은 정혁(임슬옹). 26년 뒤 미진은 국가대표 사격선수의 꿈을 접었고, 진배는 조직폭력배로 살고 있고, 정혁은 경찰이 되어 '그 사람'이 외출할 때에 맞춰 신호등을 조작한다. 이들 앞에 대기업 총수인 김갑세 회장(이경영)과 그 양아들이자 비서인 주안(배수빈)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암살하자는 제안을 한다.

분노가 차오르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느린 템포가 아쉽긴 하지만 중요 장면마다 극적 긴장감을 높인 솜씨가 돋보인다. 미진이 횡단보도에 서서 '그 사람'을 총으로 겨누는 1차 암살시도 시퀀스는 심장을 멎게 만든다.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도 좋다. 특히 진배 역의 진구는 조폭다운 저돌성과 능글맞은 연기를 오가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혜진의 서늘한 눈빛도 압권이다. '그 사람' 역의 장광은 정말 '얄밉게' 그려낸다.

그래서 '그 사람'을 죽이느냐고? '26년'이 던지는 메시지는 정혁이 누나를 떠올리며 쏟아내는 대사에 들어있다. “어른이, 경찰이 돼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조근현 감독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사죄하지 않는다면 단죄라도 받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차원에서 연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현실에서 라스트는 씁쓸하다.

안순택 기자 sootak@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