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계룡시 향한리, 논산시 상월면
▲농바위 천길 낭떠러지 |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갈라져 나오고 그 끝 주화산에서 금남정맥이 시작하여 운장산과 대둔산을 거쳐 계룡산에 이른다. 계룡산 어림에서 금남정맥은 산태극을 이루며 금강을 따라 서남향으로 돌아 나간다.
여기서 계룡산은 손가락으로 남쪽을 가리키듯 한 가닥 산줄기를 남으로 뻗친다. 계룡산에서 거의 일직선으로 연산까지 뻗은 이 산줄기의 중간쯤에 향적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향적산 줄기의 동서 비탈은 지도의 등고선이 보여주는 것처럼 거의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향적산 주봉 일대의 서면과 농바위 일대의 동서 양면은 깎아지른 바위벼랑으로 장관을 이룬다.
바위벼랑이 많은 산은 경관도 좋지만 조망 또한 좋다. 향적산 산행을 안내하며 향적산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향한리 강선구 전 이장은 향적산에서의 조망이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에서의 조망보다 오히려 좋다고 자랑했다.
향적산에서는 계룡산을 바로 턱 밑에서 올려다 볼 수 있고 산줄기 너머로 대전시도 조망된다. 뿐만 아니라 서대산, 진악산, 대둔산, 덕유산, 운장산, 오서산 등이 조망된다.
여기 향적산의 조망에서 감회가 깊은 것은 남쪽과 남서쪽의 드넓은 황산벌을 보는 것이다. 옛날 백제군과 나당 연합군이 결전을 벌였던 황산벌이 내려다보이고 백제군을 지휘했던 계백장군의 묘소가 있는 부적면 일대도 보인다. 향적산 서쪽 자락 논산 땅에는 용국사가 있고 구인사 계통의 규모가 큰 금강불교대학도 있다.
향적산에는 거북 모양의 기묘한 바위가 두 군데 있다. 산제당과 귀룡선원 두 군데에 있는 거북바위가 위는 거북등처럼 판판하고 아래는 5~6평의 굴처럼 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약수가 나오고 있다. 산제당의 거북바위 위에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용바위라는 신기하게 생긴 긴 바위도 근처에 있다.
신비의 산, 향적산의 천지창운비와 오행비=향적산은 신비의 산이다. 고스락에 가까운 높은 산중턱에서 나무를 지게에 지고 가는 90살 노인을 만났다. 상 노인과 나무지게, 별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산 고스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묘한 천지창운비와 오행비가 있다.
서쪽으로 엄청난 바위벼랑을 가지고 있는 향적산의 주봉 고스락에 세워져 있는 천지창운비(天地創運碑)는 향적산의 신비를 대표한다.
천지창운비는 한 변이 약 3m 쯤 되는 정사각형의 얕은(20㎝ 정도) 담 안에 머리에 판석을 얹은 높이 2m의 사각 돌비다. 이 비의 동쪽 면에는 천계황지(天鷄黃池-하늘의 닭과 누런 못) 서쪽 면에는 불(佛) 남쪽 면에는 남두육성(南斗六星) 북쪽 면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담을 이루고 있는 네 귀퉁이의 기둥 돌에도 원ㆍ형ㆍ이ㆍ정(元ㆍ亨ㆍ利ㆍ貞)이 한자씩 새겨져 있다.
이 천지창운비와는 별도로 그 옆에 오행비(五行碑)도 서 있다. 이 오행비는 높이 약 1.6m의 사각 돌기둥으로 서면에 화(火) 남면에 취(聚-모이다, 무리의 뜻) 북면에 일(一) 동면에 오(五)자가 새겨져 있다.
천지창운비는 향적산에서 비롯되는 천지의 운세를 나타내는 비로 북쪽의 묘향산과 구월산에 흩어져 있는 단군성조의 얼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 주장한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평양에서 살다가 향적산으로 옮겨온 조미양 할머니가 묘향산 구월산에 있는 단군성조의 얼을 이곳으로 옮겨 모시고 신봉하는 활동을 펼치다 1948년 작고하자 며느리 손씨 부인이 시어머니의 공덕을 기리고 그 정신을 받들기 위하여 여기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천지창운비와 오행비의 글과 글자의 뜻을 정확하게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천지창운비와 오행비와는 별도로 산제당에서 정역(正易)을 창시 연구한 일부(一夫) 김항(恒) 선생은 세계의 중심지는 한국이며 한국의 중심지는 계룡산이라 주장했다.
일부 김항 선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제당에 있는 거북바위가 주역의 '하도(河圖)'이며 용바위는 주역의 '낙서(書)'로 여기가 계룡산의 중심이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거북바위와 용바위가 계룡산의 중심이며 한국의 중심이고 더 나아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주장이 된다.
또 향한리 골짜기에는 숭산스님이 세운 국제선원인 무상사가 있고 곳곳에 기도터 산제당 수련원도 있다.
향적산의 이름=향적산(香積山)의 이름의 한자의 뜻은 '향이 쌓인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향적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알려진 것이 없다. 계룡산 줄기인 이 향적산은 옛날부터 영산으로 알려져 많은 종교인과 기복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 소원을 빌기도 했고 수도를 위하여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이 피운 향의 '향기가 쌓여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국립지리원의 공식 지도에는 향적산 574m의 주봉에 향적산이라 표기 되어 있고 같은 줄기의 남쪽 계룡시 도곡리와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 경계에 있는 436.5m의 봉에 국사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나는 예전에 이 문제를 다룬 일이 있었다. 산 전체를 '향적산'이라 하고 주봉을 '국사봉'이라 해야 옳다는 주장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현지 주민이나 계룡시에서도 574m봉을 '국사봉'이라 부르고 있다. 오직 공식 지도에서만 잘못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국사봉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조 태조가 신도안을 도읍으로 삼으려 했을 때 국사봉에 올라 계룡산 일대의 지형 지세를 살핀 바 있고 나라의 큰 스승이 나올 곳이라 하여 국사봉을 한자로 '國事峰' 또는 '國師峰'이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챙겨보기
▲올라가는 길
맨재 길:종평 저수지~(무상사)~외딴집(나 이장 댁)~약수터 산신당~맨재~갈림길~513m봉~(등성이길)~헬기장~고스락-농바위.(약 1시간 50분, 하산 시간은 약 1시간 10분) 산제당 길:종평 저수지-귀룡정사-산제당~기도터~헬기장~고스락~농바위.(약 1시간 30분, 하산시간은 약 1시간)
소산(素山)산행문화연구소장은?
1932년 금산 출생. 42년간 교단에 서오다 1997년 퇴직한 뒤 산행문화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산행을 주제로 한 저술활동으로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 '한국 51 명산록', '조망의 즐거움', '산행문화와 웰빙 라이프'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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