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화 사회단체부 부장 |
이때쯤이면 선거전략가도 반짝 등장해 기량을 뽐내고 유권자들은 TV 토론 등 '관전 포인트'를 챙기며 관심을 보인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삼스럽거나 낯설지 않은 평범한 풍경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에 있다. 다음 빈 칸에 알맞은 이름을 넣으시오. 후보 부인은 시위에 참가해 국기를 태웠으며 증거 사진도 있다. 후보는 국기에 대한 맹세 법안을 거부했다. 후보는 국가안보를 위한 사실상 모든 방어 시스템에 반대한다. 빈 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이름은 1988년 미국 대선에 나선 마이클 듀카키스 민주당 후보였다. 결과는 공화당 후보인 조지 H. W. 부시(부시 아버지)가 54%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선거초반 레이건 정부의 부통령으로서 무능한 2인자, 총구를 미국으로 향할지도 모르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이란 테러리스트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중앙아프리카 콘트라 반군과 마약거래까지 서슴지 않았던 공화당 후보 부시는 민주당 듀카키스 후보와 두 자릿수 지지율 격차를 보여 대통령 당선은 꿈같은 얘기였다. 그러나 빈 칸을 듀카키스로 채워 넣은 다스베이더의 등장으로 부시는 대통령이 될수 있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습한 가면과 검은색 옷, 악당중의 악당인 다스베이더. 그는 37세의 공화당 선거전략가 리 애드워터였다. 애드워터는 부시를 '애국자'로 포장하고 상대후보인 듀카키스에 대한 거짓된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미국민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아니면 말고'식의 마타도어를 주요 선거전략으로 구사한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믿는 것이 '인간 이성'일 것 같아도 이미 유권자 뇌리에는 거짓을 기정사실로 믿어 버렸다. 애드워터는 미국 대선사상 최저 투표율과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이라는 기록에 기여했다.
얼마전 교육방송(EBS)의 '킹 메이커'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뤄졌던 내용들이다.사실 몇 번의 대선 유권자 경험을 했던 사람이라면 네거티브 선거에 대한 데자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남북대치 상황에서 안보와 국방에 대한 '신앙'을 훼손하거나 딴지를 걸면 어김없이 좌파, 빨갱이 딱지를 붙였고 사실여부를 떠나 국가주의, 애국주의 열풍에 맥을 못췄다. '이념장사'로까지 표현됐던 것이 그리 오래된 기억은 아니다.(선거라는 계기적 상황만 아니라 최근 개봉된 영화 '남영동 1985'는 역대 군사정권에서 일삼던 용공조작의 단면을 보여줬다. 배후, 윗선의 '빈 칸'을 채우라는 집요하고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에 피고문자는 유명한 신부와 목사 이름을 대야했다) 이러한 악질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것은 '한 방'에 대한 유혹 때문이다. 상대 후보를 '훅' 보낼 수 있는 꺼리가 필요하고 가장 매력적이고 효과적인 것이 상대후보에 대한 색깔입히기로 유권자의 철옹성 같은 '안보'의식을 자극한다.
심각한 것은 다스베이더의 교활한 재주가 도덕적으로나 진실에 어긋난 것임을 후보자가 알면서도 이를 저지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용인한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없다.”(리 애드워터)
핑크색을 좋아한 '핑크대왕 퍼시'는 궁궐은 물론 백성들까지 핑크색으로 염색하도록 했다. 백성들의 치아도 핑크색으로 물들였을 것이다. 모든 산과 풀도 군인을 동원해 페인트칠을 했지만 푸른 하늘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대왕은 스승을 찾아 해결책을 모색했다. “대왕님 세상을 온통 핑크로 만들었습니다. 나와 보시지요.” 스승은 대왕에게 핑크색 안경을 씌워줬던 것이다. 이 동화는 심리학에서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하는 '프레임'이 왜 중요한지를 교훈한다. 동시에 지도자의 정의롭고 도덕적인 '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한다. 세상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위해서라면 상대에 대한 용인은 고사하고 거짓에 마비된 인간이성을 동원해 단죄해버린다.
이번 대선 후보자의 전략도 긍정과 미래 가치에 두기를 기대하며 유권자들도 어떤 거짓된 유혹과 덫에 걸리지 않는 '인간 이성'을 발휘할 때다. '다스베이더'였던 리 애드워터는 뇌종양으로 사망 직전에 미국정치에 끼친 해악을 반성하며 미국민들과 상처받은 정치인 등에게 고백편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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