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차갑게 식은 기름보일러 야속”

  • 정치/행정
  • 지방정가

[르포]“차갑게 식은 기름보일러 야속”

연탄과 달리 난방유 기부는 꽁꽁… 전기장판으로 겨울나기 혹독

  • 승인 2012-11-28 18:14
  • 신문게재 2012-11-29 7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대전 동구 쪽방촌의 조화자(69·여)씨가 차갑게 식은 기름보일러를 보이고 있다. 기름보일러 한 대로 쪽방 6개를 난방하지만, 올 가을들어 한번도 가동되지 않았다.
<br />김상구 기자
▲대전 동구 쪽방촌의 조화자(69·여)씨가 차갑게 식은 기름보일러를 보이고 있다. 기름보일러 한 대로 쪽방 6개를 난방하지만, 올 가을들어 한번도 가동되지 않았다.
김상구 기자

●'코끝 시린' 대전 쪽방촌 가보니…

대전 동구 정동 쪽방에 거주하는 권모(67)씨는 겨울마다 기름보일러때문에 속을 태운다. 보일러가 고장난 것도 아닌데 추운 겨우내 전기장판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얄밉기까지 하다.

코끝은 시리고, 아무리 이불을 감싸도 시린 어깨는 여전하다. 멀쩡한 보일러를 두고도 권씨의 겨울나기는 힘겹다.

28일 오전 찾은 그의 쪽방은 전기장판에 걸친 엉덩이는 따뜻해도 방바닥에 닿은 발과 코끝으로 냉기가 훅 전해졌다. 권씨는 “보일러가 있어도 기름을 채울 수 없어 그냥 전기장판을 사용한다”며 “기름보일러 하나를 쪽방 7개가 함께 사용해도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소연 했다.

올 가을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한 27일 대전 주거취약계층의 겨울맞이는 한숨으로 첫 인사를 대신했다. 기름보일러가 있어도 등유를 마련하지 못해 여전히 전기장판에 의존하는 주민들의 추위는 더욱 시려 보였다.

권씨의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조화자(69·여)씨의 쪽방 역시 기름보일러를 틀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흐릿하다. 200 연료통은 텅 비었고, 그나마 보일러와 호스가 추위에 얼어붙을까 헌옷이며 천으로 잘 동여매는 게 동장군을 맞이하는 유일한 방어책이다.

지난 여름 대전복지재단이 쪽방의 창문을 2중창으로 교체해 문틈 황소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올 겨울나기가 걱정이다.

조씨는 “어떨 때는 기름보일러가 참 야속하다”고 혀를 찼다.

“우리같이 쪽방촌에서 기름보일러는 애물단지나 다름없어요. 연탄보일러는 그나마 사랑의 연탄을 지원받아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을텐데….” 조 씨는 말끝을 흐리며 언제쯤 보일러를 가동시킬 수 있을 지 걱정을 앞세웠다.

현장에 동행한 쪽방상담소 이한훈 팀장은 “겨울이 코앞에 닥친 지금이 연탄이며 기름을 비축할 때지만,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난방유 기부는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쪽방은 보일러 하나를 가지고 여러 세대가 나눠쓰는 방식이어서 배분에 어려움은 있겠지만, 일단 쿠폰 형태로 다양한 연료기부를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구 대사동의 테미고개 언덕바지에서 만난 안모(72)씨도 아직 겨울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충무체육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비탈에 있는 안씨의 집은 매번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치지만, 지난해부터 기름보일러를 사용하지 못해 올해는 거실에 연탄난로를 놓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중구 대사동주민센터 이경란 복지사는 “다행히 연탄은 기관과 회사가 지원해줘 취약계층에 대부분 분배되고 있다”며 “이달에 기름보일러 취약계층 3세대에 보일러 등유를 지원한 것 외에 기부는 들어오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