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쪽방촌의 조화자(69·여)씨가 차갑게 식은 기름보일러를 보이고 있다. 기름보일러 한 대로 쪽방 6개를 난방하지만, 올 가을들어 한번도 가동되지 않았다.
김상구 기자 |
●'코끝 시린' 대전 쪽방촌 가보니…
대전 동구 정동 쪽방에 거주하는 권모(67)씨는 겨울마다 기름보일러때문에 속을 태운다. 보일러가 고장난 것도 아닌데 추운 겨우내 전기장판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얄밉기까지 하다.
코끝은 시리고, 아무리 이불을 감싸도 시린 어깨는 여전하다. 멀쩡한 보일러를 두고도 권씨의 겨울나기는 힘겹다.
28일 오전 찾은 그의 쪽방은 전기장판에 걸친 엉덩이는 따뜻해도 방바닥에 닿은 발과 코끝으로 냉기가 훅 전해졌다. 권씨는 “보일러가 있어도 기름을 채울 수 없어 그냥 전기장판을 사용한다”며 “기름보일러 하나를 쪽방 7개가 함께 사용해도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소연 했다.
올 가을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한 27일 대전 주거취약계층의 겨울맞이는 한숨으로 첫 인사를 대신했다. 기름보일러가 있어도 등유를 마련하지 못해 여전히 전기장판에 의존하는 주민들의 추위는 더욱 시려 보였다.
권씨의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조화자(69·여)씨의 쪽방 역시 기름보일러를 틀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흐릿하다. 200 연료통은 텅 비었고, 그나마 보일러와 호스가 추위에 얼어붙을까 헌옷이며 천으로 잘 동여매는 게 동장군을 맞이하는 유일한 방어책이다.
지난 여름 대전복지재단이 쪽방의 창문을 2중창으로 교체해 문틈 황소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올 겨울나기가 걱정이다.
조씨는 “어떨 때는 기름보일러가 참 야속하다”고 혀를 찼다.
“우리같이 쪽방촌에서 기름보일러는 애물단지나 다름없어요. 연탄보일러는 그나마 사랑의 연탄을 지원받아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을텐데….” 조 씨는 말끝을 흐리며 언제쯤 보일러를 가동시킬 수 있을 지 걱정을 앞세웠다.
현장에 동행한 쪽방상담소 이한훈 팀장은 “겨울이 코앞에 닥친 지금이 연탄이며 기름을 비축할 때지만,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난방유 기부는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쪽방은 보일러 하나를 가지고 여러 세대가 나눠쓰는 방식이어서 배분에 어려움은 있겠지만, 일단 쿠폰 형태로 다양한 연료기부를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구 대사동의 테미고개 언덕바지에서 만난 안모(72)씨도 아직 겨울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충무체육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비탈에 있는 안씨의 집은 매번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치지만, 지난해부터 기름보일러를 사용하지 못해 올해는 거실에 연탄난로를 놓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중구 대사동주민센터 이경란 복지사는 “다행히 연탄은 기관과 회사가 지원해줘 취약계층에 대부분 분배되고 있다”며 “이달에 기름보일러 취약계층 3세대에 보일러 등유를 지원한 것 외에 기부는 들어오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