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그러나 선거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고 또 같은 사람이라도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가며 국민들 앞에 서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국민 앞에서 희망주기 경쟁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누가 나에게 더 큰 희망을 줄 것인가의 관점에서 그들이 하는 얘기들을 잘 따져보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자세에서 관전(觀戰)을 하려해도 좀처럼 판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크다. 어떻게된 영문인지 그 흔하던 후보자간의 TV토론도 볼 수 없다. 아니 토론회는 고사하고 투표를 불과 한 달 앞둔 상태에서 후보조차 누가 최종 주자인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후보가 적어도 1년전 혹은 반년전에는 결정되어 치열한 정책토론을 거친 후에 국민들로부터 충분한 검증을 받고 선출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견주어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자조감마저 든다.
그렇다고 5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이 희망의 잔치를 아무렇게나 팽개쳐둘 수는 없다. 더욱이 작금의 국내외정세는 북한의 세대교체와 함께 미국과 중국에 새지도부가 들어서고 또한 세계경제가 급격히 요동치는 등 격랑 속에서 한국호(號)의 키를 단단히 붙잡고 헤쳐나갈 뚝심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남은 한 달이라도 온국민이 힘을 합쳐 희망찾기에 함께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선 야측은 후보 단일화를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따라 아전인수격 쟁론을 벌일 더 이상의 시간이 없다. 원만한 선에서 단일화 논쟁을 끝내되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그대로 각자 나서 국민의 심판을 당당하게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투표시간 연장 등 다른 룰 문제를 갖고 다투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미 18대 국회에서 수많은 토의과정을 거쳐 법제화 해놓은 것인 만큼 지금 불과 투표 한달을 앞두고 시간을 늘리자, 어쩌자 하는 것은 그 제안의 타당성은 고사하고 그 자체의 순수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한 일 아닌가. 빨리 여야의 최종 후보들이 국민 앞에 나서서 보다 명확한 자신들의 공약을 발표하고 다음은 일주일이라도 아니 며칠이라도 국민들이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적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단일화 과정이 지체되어 국민들에게 생각해볼 약간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투표장으로 몰아치게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역사에 큰 죄를 짓게되는 행위임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선거의 계절에 최근 유명한 한 방송 사극작가가 조선시대 인물들로 오늘날의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각료들을 재구성하여 펴낸 조각(組閣) 내용은 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는 가난한 나라 조선이 500여년이라는 긴 시간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이어올 수 있었던 그 비결은 “양식을 가진 지식인에 의해 경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대통령에는 세종대왕, 국무총리에는 선조-광해군-인조에 이르는 3명의 왕 치하에서 영의정을 지냈던 오리(梧里) 이원익을 뽑았다. 그리고 기획부장관에는 퇴계(退溪) 이황,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는 사계(沙溪) 김장생, 문화체육부장관에는 다산(茶山) 정약용 등 총 20명의 이른바 '드림팀'을 선정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두루 섭렵한 필자의 식견도 식견이지만 '양식을 가진 지식인'이라는 그의 인선 배경의 출발점이 큰 공감을 갖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 후보 본인도 중요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됨됨이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아주 부족한 것같으면서도 턱없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우리가 후보자들의 살아온 길과 인간 됨됨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들의 비전이 무엇이냐, 국민에게 무슨 희망을 줄것이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거에서 희망읽기를 가능케하는 후보에게 국민들은 미래를 맡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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