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 아직 생소하지만 미마지는 ‘한류의 원조’가 되는 인물이다. 무왕 13년(서기 612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쿠라이 마을에서 백제의 ‘탈춤’을 가르쳤다. 가면극과 음악으로 이루어진 ‘미마지 탈춤’은 ‘기가쿠(伎樂)’라는 장르를 탄생시키며 고대 일본 음악의 주류가 되었고,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 일본 전통 예능의 뿌리가 됐다.
특히 기가쿠가 일본 불교 화엄종의 본산인 도다이지(東大寺)의 낙성식 때 공연된 것을 봐도 문화적 가치를 누렸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사용했던 탈은 일본 국보로 지정됐고, 사쿠라이시는 미마지의 첫 활동무대이자 일본 최초의 국립극장 ‘토무대(土舞臺)’를 보존하고 있는 등 일본인이 쏟는 관심만으로도 그 가치는 짐작할 만하다.
백제인의 몸짓을 표현했던 국내 가면극의 시원임에도 정적 본고장에서는 까맣게 잊혀졌다. 그런 점에서 2010 세계대백제전에서 초연된 창작 마당극 ‘미마지’는 미마지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지난달 열린 58회 백제문화제는 ‘미마지의 부활’을 부제로 삼았고,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미마지의 역사적 실체를 보다 분명히 했다.
일본에 유학을 전한 아직기와 왕인이 교과서에 수록된 점을 감안할 때 일본 가면극과 궁중음악의 기원으로 추앙받고 있는 미마지도 그에 못지않다. 추진위원들은 미마지의 행적이 『일본서기』등 역사서에 기록돼 있고 기악탈 등 관련 유물이 현존하며, 일본과 국내에서의 활발한 관련 연구로 볼 때 교과서 수록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화유산 재건이라는 큰 틀에서 미마지의 교과서 수록의 논리적 근거는 충분하다고 본다. 추진위의 활동을 기대하며 백제의 예술혼이 미래 세대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마지 탈춤’을 복원·계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지금 백제 예술인 미마지 교과서 수록은 시의에도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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