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주 목원대 유아교육과 교수 |
대학의 교양강좌 중에 '예비부모교육'이 있다. 이 강좌를 담당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한 남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 친구가 결혼의 조건으로 예비부모교육을 들어달라고 했단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이 학생의 이런 사연을 학기말에 B학점을 받은 그 남학생이 예비신부에게 이 과목의 A학점을 결혼선물로 주고자 했는데 그러지 못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게 말함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의 그 남학생이 지금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현명한 아내와 부모됨의 준비까지 마친 남편이 이룬 가정이기 때문이다.
여러 직업군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물질을 들이면서 정작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에는 인색하며 심지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다. 오래전에는 특별한 준비가 없이도 여러 부모 모델과 바로 곁에서 조언해주고 손을 빌려주는 인적 자원이 주위에 많았다. 하지만 현대에는 가족구조상 '부모하기(parenting)'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동년배의 부모나 인터넷, 서적 등을 통해 흔히 정보를 얻지만 이는 바로바로 부모로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안내받기에는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기가 울며 보채는데 무엇이 원인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초보 엄마에게는 바로 곁에 있어서 아기의 몸을 찌르는 이물질이 옷 안에 있어서 아기가 운다는 것을 찾아내 주고 제거해주며 안심시켜 주는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 육아서적에는 아기의 울음을 원인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하고 있지만 이런 세세한 것까지 안내해 주지는 않는다.
“아내가 아기 보면서 정말 힘들어하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얼마 전에 첫 아이의 아빠가 된 분이 내게 물어왔다. 아기는 매우 건강한 편인데, 깨어있는 동안 한시도 가만있지 않아서 눈을 뗄 수가 없고 그런 아기를 하루 종일 돌보는 아내가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또 “전 한명 보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이 많은 아이들을 하루 종일 돌보시는지, 선생님들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유치원 교사들에게 얘기하는 학부모도 종종 있다.
물론 어린아이들과 지내려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해서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학부모들이 말하는 고달픔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유치원 및 어린이집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몇 년간의 준비를 한다.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장실습을 통해 이론과 실제를 연결시키고, 교사가 되어서도 현직교육이 계속되기 때문에 교사 개인적으로 자녀를 키워본 경험이 없다하더라도 어린아이를 돌보며 교육하는 것이, 이러한 준비 없이 부모가 된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어려움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부모하기'는 준비 없이 잘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가족 내에서 부부 단 둘이 아이를 처음 키워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근래에는 여성 취업과 육아를 겸할 수 있도록 육아지원을 국가 차원에서 책임지겠다고 하여 낮 시간에 아이를 돌보아주는 곳이 많지만 이 또한 부모의 역할을 전적으로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임신을 하고나서 태교나 육아를 위한 강습회도 있고, 부모가 되고 나서 아버지학교와 같은 프로그램도 있지만 부모가 되기 전 부모됨을 준비하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함께 요리교실을 다니며 가정생활을 준비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앞두었거나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예비부모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대학의 교양강좌에서만이 아니라 더 많은 문화강좌에 개설되면 좋겠다.
여학생이 대부분인 유아교육과에서 나는 이들에게 금연을 권한다. 흡연자가 거의 없기는 하지만 이들에게 “교사이기 이전에 여러분은 가임여성이므로 건강한 모체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금연해야 합니다. 체내에 니코틴이 축적되는 흡연을 금하는 것은 여러분의 몸에서 태어날 아가들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그들에게 금연을 권하는 이유다. 부모가 되는 것은 그 어떤 자격증 취득보다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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