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하루가 쏜살처럼 지나가지만, 학창시절의 겨울은 지루한 시간만큼이나 교실의 햇볕 잘 드는 남쪽 책상을 먼저 차지하느라 난리법석을 쳤고, 교실 밖에서는 양지쪽에 몰려서서 언 손을 비비고 언 발을 동동거리면서 하교시간을 기다리던 추억 또한 새롭다. 언 몸을 녹이는 데는 운동장 또한 큰 역할을 하였다.
휴일이나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는 마을 가운데서도 가장 넓고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한 집 마당을 찾아 모여 들었다. 이 마당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학교운동장과 같은 놀이터였다. 이 마당에서는 혼자 하는 놀이는 물론이고 편을 짜서하는 놀이판이 벌어지곤 하였다. 작은 돌을 튕겨서 차지한 만큼 선을 그리는 땅따먹기, 기하 그림으로 구획을 나눈 뒤 넓적한 돌을 차고 나오는 비석치기, 오징어처럼 구획을 나눠놓고 상대방을 밖으로 밀어내는 오징어 가이샹, 십자고누처럼 구멍을 파놓고 구슬을 굴려 넣거나 맞추는 구슬치기, 긴 어미자로 짧은 새끼자를 치고 그 거리를 재서 승부를 가리는 자치기 등을 주로 하였다. 그런데 노는 사람들이야 놀아서 좋았지만 마당을 가꿔야하는 집주인은 좌불안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이 한바탕 놀고 나면 마당이 파여서 고운 흙들이 쏠려나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놀지 못하게 막기라도 하는 날이면 온 마을에 마당에서 놀지도 못하게 하는 고약한 집으로 소문나기 일쑤였다.
마당을 이렇게 소중하게 여긴 까닭은 이곳에서 콩이며 팥, 참깨, 들깨 등을 널어놓고 도리깨질로 떨어내는데 고운 흙이 다 깎여나가고 모래라도 섞여들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추수가 다 끝나고 나거나 새봄이 되면, 한여름 장맛비에 쓸려내려 갔을 뿐만 아니라 땅에 금을 긋거나 굼을 파내고 노는 여러 가지 놀이 때문에 쓸려나간 고운 흙을 보충하기 위하여 '마당 고르기'를 하였다.
마당 고르기를 할 때는 논흙과 같이 입자가 고운 뻘흙 등을 두텁게 깔고 잘 다져서 고르기를 하였다. 잔모래는 물론이고 작은 잡티들도 꼼꼼하게 골라내었다. 그래야만 가을 추수를 할 때 곡물들 사이에 모래가 섞이지 않아 손쉽게 갈무리 할 수 있었다.
오늘 하루쯤 햇볕 잘 드는 따뜻한 마당에서 놀이에 흠뻑 빠져있던 즐거운 추억에 잠겨보자.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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