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진섭 카이스트 ICC 운영부장 |
얼만 전에 하버드대 최고의 행복 강의로 널리 알려진 탈 벤-샤하르가 지은 완벽의 추구라는 책을 읽으면서 최고를 추구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불행한 완벽주의자, 행복한 최적주의자란 주제에서 완벽주의자는 현실을 거부하고 대신 환상의 세계에서 산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사는 세계에는 실패나 고통스러운 감정은 없으며, 그들의 성공기준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매우 값비싼 감정적 대가를 치르게 되고, 실패를 거부하므로 언제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반면 최적주의자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 세계에는 어느 정도의 실패와 슬픔이 불가피하며 성공은 실제로 달성 가능한 기준에 따라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실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불안감을 덜어내며 삶을 좀 더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현실의 한계와 제약을 인정하므로 실제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정하여, 그 결과 성공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을까? 그리고 우리는 현재 어느 삶을 추구하고 있을까? 혹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과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하는 것은 선이고, 상대가 하는 것은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에 빠진 것은 아닐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당시 젊은이들의 행태를 걱정하고, 이들이 펼쳐갈 미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흘러왔고 나름의 사상과 철학과 정치·경제방식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미래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지나치게 걱정할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인간은 유한(有限)한 존재다. 그러기에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도, 조직도 유한한 존재며 우리가 하고 있고 맡은 일과 자리도 유한하다. 그러기에 그 유한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여 최선을 다하면서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든지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비움으로 인해서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내면의 자신감을 갖추는 것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시간이 흘러가듯이 세상도 흘러간다.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은 과거세대가 있기에 가능했고, 미래세대는 현재의 우리가 있기에 가능하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가치가 없는 것이 없다. 하찮은 풀과 나무에도 생명이 있고 존재 이유가 있듯이 높고 낮음과 있고 없음을 떠나 이 세상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소중한 존재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방식만을 주장하고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며,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중요하고 우리라는 범위를 끊임없이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비울 수 있다는 것처럼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무언가를 지켜야 하고,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구속하고 집착하게 만들고 여유가 없게 만든다. 오히려 내려놓음으로써 그리고 비움으로써 우리는 더 큰 행복과 진정한 세상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은 한계가 없는 무한(無限)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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