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이제마가 '동의수세보원'에서 정리한 사상의학에 의하면 사람은 체질에 따라 태양인과 태음인, 그리고 소양인과 소음인 등 네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전하는 연암의 초상화에 의하면, 상체가 크고 눈초리가 사정없이 올라간 연암이야말로 1% 내외밖에는 안 된다는 태양인임이 분명하다. 물론 그 시대는 사상의학의 개념이 생겨나기 전이었다.
그림으로 대하는 연암의 모습이로되 그 풍모를 견주어보면 '억선형' 같은 섬세한 작품이 그의 손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하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그때는 그나마 형을 보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 형마저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아버지는 어디서 볼 것이며 형은 또 어찌 그려볼 수 있겠는가? 깊은 탄식과 함께 연암은 시냇물로 달려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것이다.
'열하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연암의 면모는 질풍노도, 좌충우돌, 종횡무진, 절차탁마 등으로 정리된다. 그만큼 변화가 무쌍하기 그지없는 인물이 연암이다. 18세기 조선의 이 지성은 끝없는 지적탐구와 현실개혁의 의지를 불사르며 자신의 나라가 난국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방책에 대한 실험으로 평생을 골몰하였다. 그런데 그 칼날 같은 이론가이자 실천가도 마음 한구석 밑바닥에는 '억선형'과 같은 감성이 흥건히 고여 있었던 것이다.
20여 년 전의 한 보일러 광고를 기억하고 계시는지…. 상식을 뒤흔드는 이야기겠지만, 겨울에는 보일러가 안 팔린다고 한다. 대신 더운 여름철이 보일러의 성수기라는 말이 있다. 1991년 여름, 그만그만한 보일러 업체 중 K보일러에서 광고를 만드는 일이 있었다. G보일러나 R보일러 정도가 유명세에 힘입어 차별화되어 있을 뿐 몇몇 군소회사들이 나머지 시장을 분점하고 있을 때였다. K보일러도 그 나머지 회사 중의 하나였다. 이럴 때 광고는 다른 회사와 차별이 되는 점을 찾아내야 한다. 일을 맡은 광고사는 여러 차례 내부회의를 거쳐 '효(孝)'를 광고의 주제로 정했다고 한다. 대도시는 이미 가스 시대로 접어들어 보일러가 필요 없었으나 시골에는 아직도 연탄보일러를 쓰는 집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을 기름보일러로 바꾼다면 시장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것이다. 문제는 시골에 사는 사람, 특히 노인들의 경제력이었다.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추운 겨울날 밭일에서 돌아온 늙은 부모가 집으로 들어와 방구들부터 만져본다. 온종일 비어 있는 방안에 온기가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러자 바로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 걱정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날도 추운데 애들 잘 있나?”, “글쎄다.” 독백처럼 뱉어내는 두 노인의 대화를 광고는 무심하게 처리했다. 이어지는 카피 또한 도시에 사는 며느리의 목소리로 간단하게 처리하고 넘어갔다. “여보, 아버님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광고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제품이 죽죽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보너스 달에는 시공하기에도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고 한다. 3년 적체된 재고 물량이 6개월을 넘기지 않고 몽땅 빠져나갔다. TV광고를 접한 도시의 아들딸 내외가 이 겨울에 시골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감성을 우리는 특별히 감수성(sensitivity)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제는 어지간한 시골에도 기름보일러가 보급되어 훈훈한 겨울을 날 수가 있게 되었다. 20년 전 보일러 광고를 접한 도시의 자식들이 시골의 부모님에게 하나씩 장만해드린 결과로 애써 풀이해본다. 하지만, 아직도 도시의 뒷골목에는 연탄을 때는 집들이 없지 않다고 한다. 저소득층이나 특히 독거노인들의 경우는 낱장의 연탄에 의지하여 한 해 겨울을 난다는 것이다. 차제에, 이 겨울을 앞두고, 카피를 바꾼 또 하나의 보일러 광고가 출현했으면 싶다. 그것은 이를테면 우리의 잃어버린 감수성을 회복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는 아주 뛰어난 광고가 아닐까싶다. 독거노인들 또한 우리들의 아버지이고 또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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