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몇 년 전 '시티홀'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차승원이 시장후보로 나와 연설하는 중에 나오는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주인공은 주민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1억 원의 돈을 버는 것과 숫자로 1억까지 세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빠를까? 몇몇 사람이 숫자로 1억까지 세는 것이 더 빠르리라고 답변한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1억까지 세는 시간을 계산해 보인다. 숫자 하나를 세는데 1초가 소요된다고 가정하고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오로지 수만을 센다고 할 때에도 3년 2개월이 걸린다.
만약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숫자를 센다면 아마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래서 1억 원을 버는 것이 1억이라는 숫자를 세는 것보다 더 빠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시장후보로서 유권자들에게 성실한 삶을 살아도 제대로 1억 원조차 모으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어려운 현실을 말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1억이라는 숫자는 대단히 큰 수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 '억'이라는 단위가 우리 시대의 거품을 보여주는 단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억'이라는 단위가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세계인구 수로부터 시작해 매일 보는 신문 기사 속에는 '억'이라는 단위는 통계수치를 나타내는 기본단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의 의식 속에도 '억'이라는 단위가 자리 잡고 쉽사리 사용되고 있어 거품은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인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원이 만개 있으면 1억 원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만원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일상생활의 기본 화폐단위인 것이다. 그래서 만의 만이 모인 1억이라는 숫자도 그다지 큰 수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숫자로 부풀려진 거품 속에 살고 있다. 버블 경제, 이 거품 경제라는 말은 일본의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설 무렵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서 나온 말이지만 이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됐다.
사실 거품이 나온 그 바탕에는 숫자라는 것이 존재한다. 집 한 채가 1억 원이면 그다지 좋은 집이 아니다. 대전에 있는 아파트도 20평 정도면 1억 원이 넘는다. 1억이라는 것은 숫자의 크기에 비해 인간이 평가하는 가치는 형편없이 적다. 그래도 이 정도면 봐 줄만 하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거품을 보자. 주택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단순하다. 우리가 주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먹고 마시고 쉬고 잠 잘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면 과연 4인의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통계는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31평 정도의 아파트면, 단독주택의 경우 60평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31평 보다 큰 평수의 아파트나 단독주택 60평 이상인 주택의 경우 4인 가족으로서 그 이상의 공간은 분명 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31평 보다 큰 평수의 아파트가 훨씬 편리하고 좋다고 생각하고 그런 곳에서 살기를 원한다. 주택뿐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명품 가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 가지고 다녀야 할 필요한 물건을 담는데 몇 백만 원 되는 명품 가방이 왜 필요한 것일까? 수십 층 높이의 시청건물은 또 왜 필요한 것일까? 시민들을 위한 시청건물일까? 아니면 시장 자신의 업적을 위한 과시용일까? 바로 우리의 의식 속에는 이미 본질적으로 거품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인간의 행태를 과시욕에서 오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시욕이라는 그 자체가 이미 거품과 동의어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결국 거품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어리석음의 결과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조금 더 잘 보이기 위해 작은 일을 큰일이나 되는 것처럼 과장하면서 말하지 않았나?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없는 일을 필요한 것처럼 고집을 피우지 않았나? 이러한 인간적인 어리석음이 우리 사회의 보편성이 되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즉 우리나라가 외형적으로 대단히 성장하고 커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외형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양 자랑스러워한다. 사실 거품은 아름답다. 부풀려진 비눗방울을 보라. 햇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띤다. 그리고 표면의 움직임을 한참 보고 있노라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거품에서 바로 이러한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보지만 실제로 그 속은 빈 공간, 때로 사라져 버릴 허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2만 달러라는 수치로 인해 이러한 거품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있지 않은지? 아직도 어렵고 힘든 삶을 살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잘 사는 나라라고 믿고 그것으로 위안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믿음이 단지 거품의 아름다움이 아닌지?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면 우리 사회의 거품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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