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현 금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이는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적 성장속도와 비교하면 복지실현 정도가 미진하였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복지선진국들의 위기사례를 보면 알 만한 사람이면 어느 정도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필자와 같은 사회복지학자는 원칙적으로 보편적인 복지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상당수의 재정학자는 경제상식에 어긋난 포퓰리즘으로 보고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기도 하다. 그만큼 복지제도는 현대사회에서 거대담론이고 보는 관점이나 이론에 따라서는 해결책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위험이 되기도 하는 복합성이 있다.
이와 같은 정치권의 복지공약은 흔히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영국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후인 1945년 총선에서 보수당에 맞선 노동당이 393석을 획득해 압승하여 처음으로 과반수의 의석을 점유하였던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Richard Attlee) 총리가 첫 단독 정권을 성립한 후에는 전시의 보수당 처칠 정부에 의해 세워진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에 바탕을 두고 완전고용의 기조를 둔 복지국가를 구축하였다는 점은 그만큼 복지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하는 사례가 된다. 아울러 1997년 총선에서도 새로운 시대(New Times)와 제3의 길(The Third Way)의 복지이데올로기를 내세워 418석 획득으로 압승한 토니 블레어(Anthony Charles Lynton Blair) 노동당 당수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나라의 실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이 막대한 대미 전시 부채 규모와 높은 국민담세율에도 불구하고 보수당과 진보당이 합심하여 복지국가 구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던 상황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 즉 보수당과 진보당은 진작 복지실현에 소요되는 재원충당의 방법론에서는 마뜩한 이론이나 보고서를 내놓지도 못하고 있고 상당히 슬로건적인 구호들만 난무하는 실정이다. 고작 부자증세나 법인세 증세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어눌한 방안들은 저소득층에게는 솔깃하겠지만, 중산층이나 경제권의 조세저항을 가져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복지제도에 필요한 재정 추계를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재정충당의 근거가 되는 경제성장률이나 국민의 조세부담률 증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대한 진전은 극히 미진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냥 대통령 후보가 재원충당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의 발언을 하는 것만으로는 선거에서 복지수혜계층의 표를 의식한 공약(空約)으로 인식될 수 있고, 선거 이후에도 선진복지국가 구축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복지국가에 대한 정확한 비전제시와 복지 마스트 플랜이 정치 리더들의 자질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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