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호 대전 동구의회 의원 (전반기 의장) |
김종필이 정계를 은퇴하자 바통을 받아 충청의 맹주가 된 심대평은 2006년 1월에 국민중심당을 창당한다. 창당 배경에는 한나라당의 '행정수도 이전 반대'에 대한 반발을 앞세워, 충청도의 권익은 지역정당이 사수하자는 명분을 내세웠다. 충청민의 에토스를 자극하면서 2007년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심대평은 충청의 한가운데인 대전 서구을에서 당선되면서 구심력을 모으는듯 했다. 그러나 그뒤 2개월 동안 1명의 국회의원이 입당하고 2명이 탈당하는 등 의석수 5자리에 불과한 국민중심당은 항상 불안했다.
마침내 이회창을 영입하면서 국민중심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회창은 대통령후보 출신답게 대통령을 염원하는 충청민의 에토스를 최소한이나마 자극하였다. 2008년 창당한 자유선진당은 그 해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지역바람에 힘입어 18석의 국회의석수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정치력을 발휘하여 창조한국당과 함께 선진과 창조의 모임을 만들어 교섭단체가 되면서 원내 제3당으로 도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심대평 대표가 탈당하는 등 지도부의 잦은 내홍으로 선진당 바람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상당히 위축되었다. 창당 이후 2년간 두드러질 정도로 충청권 내 타당으로부터 선진당으로의 입당러시가 있었지만, 광역단체장 1석, 기초단체장 13석, 광역의원 41석, 기초의원 117석을 건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제19대 총선을 반여년 앞두고 지역민들의 따가운 질타를 뒤늦게 봉합하고자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심대평의 국민중심당, 그리고 이인제 의원이 충청권 통합을 호소하며 통합 자유선진당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민심은 이미 떠난 뒤여서 자유선진당은 19대 총선에서 지역구 3석밖에 당선시키지 못했다. 총선패배 이후 이회창과 심대평은 사라졌고, 이인제 의원이 남아 선진통일당으로 당명을 개명한다. 그리고 마침내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과 합당함으로써 선진당은 문패를 내렸다.
자유민주연합이 출범한 1995년부터 17년째, 국민중심당이 창당한 2006년부터 6년째, 그리고 선진당의 명패를 건 2008년부터 4년 만에, 충청지역을 근간으로 하여 충청민의 권익을 대변하겠다던 충청지역정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를 두고 후련하다고 해야 할까?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구시대적인 정치패턴이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 속을 어찌나 썩이는지 천둥망아지같은 자식에게 '차라리 나가 뒈지라'고 했더니, 진짜 죽어 돌아와서 부모에게 복수라도 하는 꼴인가?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
합당은 큰 틀에서 가치와 목적을 함께하는 정당과 한다고 했다. 언제는 가치와 목적이 그리도 달랐단 말인가? 17년간 충청인의 에토스를 자극하며 충청인을 보호할 지역정당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지도부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충청인들이 외면하자 대전역 앞에서 석고대죄하며 큰 절로 용서를 빈 지 7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용서를 받지 못해 총선에 실패하자, 이제 아예 문을 닫았다. 왜 문을 닫기 전에 충청인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그동안 17년간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말한마디 못하는 걸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