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희량 서산 운신초 교사 |
“노력은 하는 거니?” 나머지 공부 시간이면 멍하니 서 있는 녀석이 늘 내 속을 긁어놓기 일쑤다. 늘 내 성의를 무색하게 하는 녀석이 정말 얄미웠다. 결국, 소리를 지르며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는 내 눈앞에는, 언제나 한쪽 구석에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서 있는 녀석이 있었다.
“선생님이 애쓰는 거 안 보여?, 너도 성의는 보여야 하잖아?” 1년이 다 가도록 녀석과의 씨름은 이어졌고, 녀석을 꼭 변화시켜보겠다던 내 열정은 '어쩔 수 없는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주면서 그럴싸한 변명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녀석은 결국 구구단도 다 못 외운 채 졸업을 하고 말았다. 나의 교직 경력에 커다란 흠집을 낸 것이다.
“선생님, 성민(가명)이가 학교도 그만두고 깡패들이랑 다닌대요.” 녀석을 보낸 지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이제 잊을만하다고 생각했던 녀석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그냥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뭔지 모를 죄책감, 책임감이 내 속에서 자꾸 꿈틀거렸다. 며칠을 고민하고 잠을 설치다가 녀석의 집을 찾아갔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그 집을 제 집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겁도 나고 돌아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무작정 집안으로 들어가 한쪽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는 낯익은 한 녀석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내가 이 아이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면서….
“도대체 왜 그런 형들이랑 다니는 거야, 응?” 집으로 무작정 데리고 와서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녀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남을 괴롭힐 만큼 당찬 녀석도 머리 좋은 녀석도 아니지 않은가? 내 마음을 조금 알아줬는지 간신히 입을 연 녀석의 말이 나를 또 한 번 후려친다.
“저~ 선생님, 저 귀가 안 들려요. 그래서 학교는 가기 싫어요.” 녀석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녀석은 오래전 귀를 다쳤고 바쁜 엄마에게도, 공부만 가르치려는 엄한 선생님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이 지경까지 오고 만 것이었다. 순간 나머지 공부를 시켰던 그때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녀석이 안 들려서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것을 짐작조차 못 했던 걸까. 온몸에 맥이 탁 풀렸고 녀석을 끌어안고 그만 엉엉 소리 내 울어버리고 말았다.
가출한 엄마 연락처를 모른다며 끝내 알려주지 않던 녀석은 못된 형들과는 다시 같이 다니지 않겠노라며, 다음 주에 나와 같이 병원에 가보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날 저녁 남편과의 상의 끝에 녀석의 수술비를 마련해주자는 결론으로 못다 한 선생님으로서의 소임을 다해보고자 했지만, 1주일 뒤에도 한 달이 지난 뒤에도 녀석은 끝내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 후 녀석이 엄마에게 갔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 가족과 함께 잘 지내리라는 생각에 위안이 된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켠 시커먼 멍으로 남아있는 녀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도 나는 성민이를 닮은 아이들 때문에 맘고생을 하곤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멍 자국을 만들지 않으려고, 아이들의 눈빛 속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공부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면서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오늘도 교단을 오른다. 아이들이 바로 나의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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