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택 논설위원 |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이른바 유력 후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제민주화, 사회통합, 복지, 남북관계를 테마로 꺼내들 때만 해도 뭔가 달라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뿐. 개혁설계도는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인 액션플랜은 감감무소식이다. 아직도 공부중인가. 뭣 하나 그럴싸한 비전, 헤매는 한국을 다잡을 발전 공약 하나 못 내는 후보들을 두고 저울질해야 하는 형편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무얼 보고 선택하라는 것인가.
텅 빈 마당에 낙엽만 쌓이듯 정책이 실종된 대선 마당에는 그림자만 횡행한다. NLL(북방한계선)을 둘러싸고 여야는 사생결단이라도 낼 양 대립하고 있다. 정수장학회 공방도 틈만 나면 도돌이표다. 투표시간 연장 문제를 놓고도 대립각이 날카롭다. 정책 이슈라기보다 본질적으로 네거티브 성격을 지닌 NLL이나 정수장학회 공방이 과연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검증을 핑계로 과거사를 들추며 동어반복을 통해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자는 의도는 아무리 보아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도 굵직굵직한 이슈가 많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현안, 양극화와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조금도 해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심화시켰다. 청년백수, 비정규직, 퇴직을 앞둔 베이비부머, 절대빈곤층과 고령층, 하루하루 부도를 걱정하는 중소기업,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빈농과 영세어민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깝다. 흩어지고 찢겨진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할 공약, 국민의 힘을 북돋울 한마디는 누가 말해야 하는가.
사분오열된 공동체를 복원하고 심화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들이 논의돼야 할 것이 아닌가.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는 누구나 다 원하는 바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복지를 확대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어떤 방법으로 조달하고, 일자리는 무슨 수로 늘릴 것인지, 부자들과 중산층을 설득할 성장전략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내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수도권과 지방의 망국적 괴리는 또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공론화해야 한다.
대전과 충남만 해도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세종시의 '계획대로' 추진이 반드시 돼야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발생 5년이 되었지만 서해안 유류피해 주민들은 아직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고, 미래 한국의 먹을거리를 만든다는 대덕연구단지는 오래되고 못쓰게 된 장비로 가득하다. 역대 정권의 홀대로 충청민의 가슴에 맺힌 상처는 깊고 쓰리다. 보듬고 바꿔야 할 것들에 대해서 언제 말 할 것인가.
그나마 후보들이 지방분권 정책의제를 공약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은 반갑다. 박근혜 후보는 '합리적인 수도권 관리체제 운영'은 빼겠다고 하고, 문재인 후보는 '국민 합의와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것은 추진 시기와 방법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토를 달았지만 '균형발전 지방분권 전국연대'가 제시한 정책의제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분권 개헌도 들어있다. 헌법을 개정해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다'라고 선언하고, 법률을 국가법률과 자치법률로 이원화해 광역지방의회에 자치법률 제정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헌법을 명시하는 것이다. 스무 살 넘어선 지방자치가 이제야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후보들이 하나같이 시대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국민통합은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양극화는 또한 지방분권 없이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 지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미래가 달린 사안이라는 점을 후보들이 인식한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방분권이 국가발전을 담보하는 것이기는 해도 그것 한 가지로 국가발전을 다 이룰 수는 없다. 지금 국민들은 후보들에게 묻고 있다.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향후 5년간 한국의 경쟁력을 높일 밑그림은 무엇인가, 국민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줄 리더십은 있는가를. 그것을 들려줄 때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처럼 대답할 것인가. 궁금해요? 궁금하면…,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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